顧左右而言他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1-13 18: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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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승 편집국장 {ILINK:1} 옛날 과거제도에 강급제(講及第)란 것이 있었다.
이는 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외게 한 다음 그 뜻을 틀리지 않으면 급제를 시키는 제도였다. 당시는 과거급제가 평생 소원이다시피 하던 때라 어지간한 선비면 사서삼경 정도는 원문은 물론이고 앞주 잔주까지 휑하니 외는 판이었다.

그러다보니 거의 모두가 백점 만점을 받아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급제에는 정원이 있는데 그 정원에 맞추려면 대부분을 덜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험관들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해서 모조리 떨어뜨리는 수법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였다.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는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난처한 입장에서 솔직히 시인해야할 일을 시인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는 것을 뜻한다. 어느날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와보니 그동안 친구가 처자식을 돌봐주지 않아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그런 친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구를 믿고 처자식을 맡겼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굶게 만든 사람이라면 당장 절교를 해야 합니다. 그는 친구를 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번에 이렇게 물었다.
“사사(士師, 오늘날 법무장관)가 그 부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장 파면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로 졸아오자 왕은 난처한 듯 좌우를 둘러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현장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그런데 시험관은 그 때에 왕이 ‘고좌우이언타’로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즉 좌우를 둘러보며 왕이 ‘이런저런’이야기를 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아니겠는가. 세상에 그 답을 누가 알겠는가.

사서삼경은 물론 그 어떤 서적에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나와있지 않다.
시험에는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이 있고 이처럼 오직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있다.

그렇다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정원장 및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빅4’에 대해 인사청문회가 실시되는 데 그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하는가.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전자의 시험방식이 돼야 한다.

따라서 여야간 불필요한 논쟁식 공방보다는 자질과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청문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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