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비와 숫자놀음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1-23 18: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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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승 편집국장 공무원들은 이상한 숫자놀음을 즐기는 것 같다.
올해 서울시내 상당수의 구청이 일종의 부서 판공비인 시책업무 추진비를 대폭 인상 것으로 드러났다.

구로구는 무려 43%를 올렸다고 해서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43%라고 하니까 무지막지하게 추진비를 인상한 것처럼 보이지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봤자 10억 77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노원구는 58.4% 인상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았는 데 알고보니 역시 11억280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26%를 인상했다고 발표한 강남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강남구는 자그마치 14억 440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책정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지침은 업무추진비 상한액을 14억4400만원으로 해서 지방재정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편성하도록 하고 있다.

강남구는 그 상한액을 ‘꽉’채우는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만일 상한액이 그보다 많았다면, 어쩌면 그 액수마저 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26%만(?) 인상했다고 발표하고 있으니 참으로 웃기는 숫자놀음이다.

어느 자치구 구의원은 공무원들의 이런 숫자놀음을 ‘복지부동’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똑 같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사람은 구청으로부터 10만원을 지원받고, 또 한사람은 100만원을 지원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평성을 맞추고 공정하게 처리하라고하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한 사람은 100%를 인상하고 또 한사람은 그대로 두거나 10%만 인상합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에게는 100%를 인상해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10%만 인상했다고 하면서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말하는 게 공무원들의 숫자놀음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사람은 20만원을 또 한사람은 110만원을 지원받고 있으니 하나도 공정한 게 없는 데도 공무원들은 그것을 공정한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현상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알만한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공무원들의 백분율이라는 이상한 숫자놀음에 쉽게 속아넘어간다는 것이다.

본란 기자가 알기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분이라고 여겼던 모 구청장도 공무원들의 이런 숫자놀음 논리에 말리는 모습을 본 일이 있다.

그분이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논리적인 분이 못됐던 것인지, 아니면 공무원들이 단합해서 그분을 속이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관인 것은 다른 언론매체들도 공무원들이 발표하는 백분율이라는 숫자놀음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백분율은 중요하지 않다.

실제 액수가 얼마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구로구와 노원구는 조금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구로구 판공비는 25개구중 18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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