罪와 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2-05 09: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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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ILINK:1} 중국 조나라에 조사라는 세무관리가 있었다.

어느 날 조사는 식객을 3000명이나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평원군의 집에서 나라에 바치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며 세금 납부를 독촉했다. 그러나 세금 담당과 책임자는 평원군의 세도를 믿고 그의 명을 듣지 않았다.

조사는 조세를 횡령했다는 죄목으로 세금 당당자와 책임자 등 무려 아홉명을 사형으로 다스렸다.

왕의 친동생인 동시에 재상을 지내고 있던 평원군은 조사의 방약무인한 태도를 참을 수 없어 당장 조사를 잡아다가 그를 죽이려 했다. 조사는 성난 평원군 앞에서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조나라의 귀공자인 군께서 만일 나라의 법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법은 곧 그 권위를 잃게 됩니다. 법이 권위를 잃게 되면 나라는 곧 약해지고 맙니다. 나라가 약해지면 제후들이 침략해올 터이니 그 때는 조나라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 때 군께서는 오늘의 부귀를 어떻게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 때에 평원군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그를 세금을 맡아 관리하는 장관으로 추천했다. 조사가 장관이 되는 그 날로 권문세가의 탈세 행동이 일소되고,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세금이 훨씬 가벼워지며 국고 수입은 오히려 더욱 늘게 됐다.

법이 제대로 행해지려면 웃사람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 반대로 법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는 것은 웃사람이 먼저 그 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법지불행 자상정지 (法之不行 自上征之)’다.

지금 남북정상회담 직전 이뤄졌던 2억달러의 대북송금 경위 규명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격돌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현대상선을 통해 이뤄진 대북송금이 사법적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한데 이어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정치적 해결론을 제기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뭐 그렇고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적당히 넘어가자’ 그런 뜻이다.

물론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여야가 초당적 합의점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이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어서도 안되고 그동안 성과를 걷어온 햇볕정책이 후퇴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려고 해도 뭐가 뭔지 그 진실만큼은 마땅히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은 그 진실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2235억이라는 거액의 자금이 미묘한 시점에, 그것도 불투명한 용도와 경로로 북한에 전달됐다면 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혹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안이 아닌가. 이것을 얼렁뚱땅 넘기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따라서 그 진실을 분명히 밝혀주기 바란다. 어떻게된 것인지도 모르는 사안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처벌을 받아야 할 죄를 지었다면 그가 누구든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법지불행 자상정지 (法之不行 自上征之)’인 까닭이다.

또 특검과 국정조사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에도 한마디하겠다.

지금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공격의 호기(好期)로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한나라당에도 문제가 있다. 국민들은 대북송금 그 사건의 진실을 알기 원하는 것이지, 그로 인해 남북관계가 후퇴하거나 국익이 손상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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