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와 시장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3-04 18:22:06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편집국장 고하승 {ILINK:1} 지난 대선 당시 본란 필자는 의심암귀(疑心暗鬼)라는 고사성어를 인용, ‘병풍(兵風)’과 관련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주고받는 공방전을 빗대어 쓴 일이 있다.

그 고사성어를 이번에 또 한번 인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한비자의 ‘세난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송나라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오랜 장마가 계속되자 수해로 인해 결국 그 웅장하던 담장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 때에 부잣집 아들과 이웃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이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빨리 담장을 수리하지 않으면 도둑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정말로 도둑이 들어 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모두 훔쳐가고 말았다.

이 때에 부자가 아들에게 “넌 정말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구나”하고 칭찬을 했다. 그러면 같은 충고를 한 이웃 청년에게도 칭찬의 말을 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 놈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도둑이 들 것을 알았단 말인가.”하고 의심을 했다.

이처럼 같은 충고를 했더라도 선입견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선견지명’이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도둑 같다’고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도무지 인간의 마음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이럴 때 쓰는 고사성어가 바로 의심암귀(疑心暗鬼)이다. 자기 마음 속에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그 마음에서 여러 가지 무서운 생각이 솟아 나온다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

열자의 ‘설부편’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사람의 집 뜰에 오동나무가 말라죽어 있었다. 이를 본 이웃이 “말라죽은 나무는 재수가 없다고 하는데…”하면서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곧바로 오동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웃은 기왕 자른 나무니 땔감으로 쓰도록 자신에게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자기 집 땔감으로 쓰려고 나를 속여 오동나무를 자르게 했구려. 같은 이웃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음흉한 짓을 한단 말이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이웃이 정말 음흉한 생각을 했다면 그런 비난을 들어도 싸지만 만일 친절한 충고를 했는데,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첫 국무회의 자리에 이명박 서울시장을 배석시키지 않은 건과 관련해 ‘수군수군’ 말들이 많다.

고건 총리와 이명박 시장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사이에 일정부문 갈등이 있을 수는 있다. 고 총리가 서울시장 재직당시 업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이 시장 취임이후 대폭 축소되거나 사실상 백지화되는 일들이 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란 기자가 판단하건 데, 이시장이 고 총리가 추진하던 사업을 축소하거나 백지화시키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사감이 작용한다는 것은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장을 국무회의 배석자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지방분권’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이를 두고 갈등설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판단이다. 의심암귀(疑心暗鬼)라고 했듯이 의심을 하자면 한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