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3-27 20: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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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ILINK:1} 언젠가 필자는 ‘감성적인 통일운동을 반대한다’는 칼럼을 쓴 일이 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문익환 목사님이 필자를 집으로 초대한 일이 있다.

아주 아담한 한옥에, 잘 어울리는 예의 그 연초록 빛 개량 한복을 입으시고 언제나처럼 인자한 웃음까지 머금은 채 필자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모님은 제법 맛나 보이는 한과까지 준비하셨다.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그분은 언제나 민중건강을 강조하셨다. 그분이 말하는 민중건강이란 바로 ‘물(水)’이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옥중에서 터득한 철학”이라며 어김없이 물에 대한 예찬론을 전개하셨다. ‘아마도 그 칼럼의 일을 잊으신 게로구나’하고 안심하고 있을 즈음에 목사님이 느닷없이 호통을 치셨다.

“자네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역사에 그런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자네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드러내놓고 우익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통일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걸 모르는가?”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통일 반대론자였던가. 그렇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듯이 필자에게도 통일은 간절한 염원이었다.

다만 당시 필자의 생각은 이러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통일이 되었을 경우, 과연 민중의 삶의 질은 얼마만큼 나아질 것인가.

그러나 결론은 ‘오히려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형태의 통일이라면 오히려 민중의 삶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측 자본가 세력과 북측의 공산당을 중심으로한 권력집단이 결탁, 값싼 노동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통일에 앞서 남북 기득권 세력들의 기득권이 유지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미처 그분에게 전해지지 않아 통일반대론자로 오해를 받게 됐던 것 같다.

우리는 이미 10여년 동안 지방자치제를 통해 지방분권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구호만 요란했을 뿐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지역 기득권 세력들을 위한 ‘그들만의 자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잘못된 자치를 바로잡으려면 무엇보다도 이들을 감시·감독할 지방지가 바로 서야만 한다.

광역지방자치마다 지방일간지가 있고,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주간지역신문이 발행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역언론이 중앙언론의 곁가지에 불과한 모습이라면 지방자치의 발전은 없다.

지역언론이 부실하고 부패한 상태에서,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면 실패할 것은 자명하다. 어렵사리 지방분권이 추진된다 하더라도 비대해진 지방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지역언론이 없다면 오히려 지방정부의 부조리와 부패만 만연해질 것이다. 지방분권을 실시하기 전에 지방언론육성책을 먼저 마련하라고 하면 그 때 통일반대론자로 오해를 받았던 것처럼 지방분권 반대론자로 오해를 받지나 않을까 그 점이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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