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때 아름다운‘권위’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4-15 17: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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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 정지처분을 받은 민주당 이훈평 의원에게 네티즌의 격려와 칭찬이 쇄도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뚱딴지같은 얘기지만 사실이다.

이 의원이 비록 법을 어기긴 했으나 ‘국회의원’ 신분을 악용하지 않고 순순히 처벌에 응한 데다 홈페이지에 반성문을 게시하고, 당 윤리위원장직을 내놓은 점등을 네티즌들이 높게 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네티즌은 “민주당 구주류인 당신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필자도 그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난 주 금요일 오전, 민주당 신주류 핵심인 사람으로부터 “시간나면 퇴근후 술이나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시간 약 1시간 전에 전화가 왔는데 허인회 위원장 후원회 참석문제로 30분 가량 늦을 것 같으니 양해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허위원장을 아끼던 터라 “그 후배 많이 도와주시라”는 부탁을 하며,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다시 전화가 왔다. 10분 정도만 늦으면 될 것 같다는 전화다.

불과 10분 늦는 것을 가지고, 그 바쁜 와중에 직접 전화를 걸어 두 번씩이나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하는 그를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사과의 뜻이라며 가수 뺨치는 솜씨로 멋들어진 가곡 한가락까지 뽑아주는 데 그야말로 ‘뿅’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날 우리 둘은 즐거운 마음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정말 술을 많이 마셨다.

불과 며칠전 필자는 한나라당 당권주자로 몹시 바쁜 모 의원과 조찬약속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5분 가량 늦은 일이 있다. 당시 웃음으로 미안함을 대신했으나 왜 필자가 이처럼 사전에 양해 전화를 하지 못했을까하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에게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실 음주운전을 한 이훈평 의원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이 그를 칭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의 솔직한 인간성과 권위를 버린 모습 때문이다.

여당 실세인 모의원이 그다지 얄밉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 미안해하는 그의 인간적 모습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이처럼 정에 약하다. 권위를 버리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심성이다.

반면,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앞에서는 단호하리만큼 엄한 것이 또 우리 국민이다.

엊그제 우리 정치부 기자들 몇몇이 국회에서 열린 홍준표 의원 후원회에 갔다가 어느 시의원을 만났는데 그의 오만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시의회 위원장이 무슨 큰 감투나 되는 양 행세를 했다니 참으로 가관이다.

사실 그가 가진 권위는 누가 만들어 주었는가. 바로 우리 서울시민이다.

그렇다면 그 권위를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서울시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권위는 버릴 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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