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보도에 있어서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사실을 균형있게 전개하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균형있는 보도라는 것은 어떤 사건이 전체적으로 공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독자들, 즉 일반대중에게 어떤 뉴스가 공정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균형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 뉴스의 균형성은 곧 뉴스의 강조와 완전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이 균형성과 양비론을 혼동하는 기자들이 있다.
전교조 교사들과 학교장들간의 감정이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제 서울시내 3개 중고등학교가 교내에서 농성중인 전교조 교사들을 상대로 ‘학교비방금지가처분’을 서울지법에 냈다.
하루 전에는 한국 국·공·사립 초중고 교장 회장협의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 교장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이 이처럼 깊어진 데는 언론의 잘못이 크다.
서교장의 자살사건과 관련, 조선일보는 4월6일자 사설에서 ‘누가 교장 선생님을 죽였나…’라며 전교조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같은날 사회면에서는 ‘徐교장 죽음은 한국교육현장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큼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4일 조선일보는 사회면에 ‘전교조와 갈등으로 자살’이라는 단정적인 기사를 쓴 바 있다. 조선일보를 보면 온통 전교조가 잘못이다.
동아일보도 전교조를 비난하는 태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동아일보는 4일 ‘전교조 사과요구 받던 교장 자살’이라는 제하의 기사로 사회면을 장식했다. 심지어 6일에는 ‘전교조가 비판받는 이유’라는 사설을 씀으로 전교조가 서 교장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비춰지도록 했다.
중앙일보는 다를까? 천만의 말씀이다. 12일자 ‘전교조 때문에 못살겠다’는 제하의 기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이 사건에 있어서 균형있는 보도는 눈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만약 차 시중 압박에 견디다 못한 여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 신문들은 어떤 형태의 기사를 썼을까.
어느 인터넷에 뜬 글인데 정말 그럴듯해 보이는 글이 있어 여기에 옮겨 적어 본다.
▲사회면 ‘자살은 인명경시다’ ‘현직교사 자살, 교육 악영향 개탄 여론 들끓어’ ▲현장인터뷰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가 자살이라니” ▲기자수첩 ‘한 교직 부적응자의 경우’ ▲사설 ‘교사 인성교육 강화해야’ ▲시론 ‘죽음을 선동하는 세력이 있다’ ▲독자투고 “애들이 뭘 보고 배웁니까” ▲국제 ‘교사자살 해외에서도 큰 문제’
물론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는 글이다. 그러나 소위 언론 밥을 먹고사는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가슴 ‘찡’한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어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균형있는 보도가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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