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과 깡패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4-28 1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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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SBS ‘야인시대’의 역사왜곡이 점입가경이다.

드라마를 보면 김두한은 거의 독립운동가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그의 폭력이 애국으로 미화되고 있으며 그의 폭력조직(조폭)이 애국단체로 묘사되기도 한다.

심지어 좌익에 대한 ‘폄하’ 등 비뚤어진 상황설정을 통해 김두한을 비롯 우익진영의 좌익에 대한 테러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해방 직후 좌우익의 대립 중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서 우익과 깡패가 결탁한 사건이 어떻게 이처럼 미화될 수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실 한국의 ‘깡패영화’는 폭력을 미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냥 깡패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야인시대’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역사드라마 장르로 방영한다는 점에서, 김두한과 같은 특정인물을 미화할 경우 단순히 폭력미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역사왜곡을 하면서도 단지 드라마일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역사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김두한이 누구인가. 그는 겨우 열여덟 살에 종로통 뒷골목 주먹 세계를 평정하고 협객(俠客)을 자처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협객이 아니다.

오히려 김두한은 엄격한 위계 질서와 조직 내부 규율을 갖춘 현대적 의미의 조직 폭력배 시조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두한 이전에도 시라소니 같은 주먹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조직을 구성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협객이라면 ‘시라소니’가 협객에 더 가깝다.

게다가 좌익에 대한 그의 테러는 결코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조직 청년단체 대한민청(대한민주청년동맹)은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다.

1946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9월 총파업을 단행하자 당시 김두한은 실습용 총과 수류탄, 죽창으로 무장한 돌격대원 3000명을 위스키에 만취케 한 뒤 용산역 기지에서 파업 중이던 철도 노조원들을 덮치고, 이 중 핵심 간부 8명을 추려내 죽창으로 살해한 뒤 역 구내 하수도에 시체를 묻었다.

더구나 김두한은 자신이 전향한 뒤 공산당에 그대로 남아 ‘좌익 주먹’을 이끌고 있었던 정진영을 납치해 직접 때려죽인 일도 있다. 그런 그가 애국청년으로 미화되고 있으며 조폭 대한민청은 애국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작금의 정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치권은 패거리의 힘을 앞세운 우익이 득세하고 있다.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과정을 보면 ‘야인시대’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편향 사람들로 구성된 국회 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 모습이 대한민청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심지어 한나라당은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청문회법을 고쳐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까지 침해하겠다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

쇠파이프만 들지 않았을 뿐, 그 모습이 힘을 앞세운 깡패집단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그렇다면 혹시 우익의 원조는 깡패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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