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당원의 한 표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6-11 1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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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겉으로 볼 때에 웅장해 뵈지만 실상은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을 보면 마치 무너질 날만 기다리는 거대한 고목을 연상케 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려 20만7445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대의원이 참가하는 전당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물론 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선출한다. 그런데 당권 주자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 정당이 대통령선거 패배의 교훈을 조금이라도 되새겨 반성을 하고 있는 정당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패배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껴야할 정당이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통적인 선거패러다임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선거의 성패는 정치자금과 조직이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비해 이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었다.

이런 선거에서조차 한나라당은 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선거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돈과 조직을 앞세우고 선거하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돈과 조직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 당권 주자들의 선거 운동 방식은 어떠한가. 정말 새로운 그 무엇이 있기나 한 것인가.

불행하게도 없다. 여전히 전당대회는 돈과 조직동원이 난무한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당권주자들은 지역에서 힘깨나 있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구당 위원장 등 기득권 세력의 ‘줄세우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참으로 웃기는 얘기다. 미안한 말이지만 지구당 위원장도 한 표요, 이전투구 경쟁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무명 당원도 한 표다. 지구당 위원장이라고 해서 열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그 무명의 당원들과 개혁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여권의 신당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이들마저 `신당바람’에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신당’에 대해 관망해 오거나 물밑으로만 움직였던 일부 의원들이 무명 당원들의 지지에 힘을 얻고 신당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거나 신당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등 동요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지주격인 이들의 동요가 탈당으로 이뤄질지도 모른다. 지주가 없으면 고목은 그 날로 끝장이다. 정당쇄신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지주 이탈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당내 기득권 세력, 혹은 지구당 위원장이나 간부들로부터 지지를 받더라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쓰러지지 않는 고목이 되려면 무명 당원의 한 표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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