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왕초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7-15 1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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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구차하게 얘기하자면 필자는 글로 먹고사는 기자들의 왕초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화려한 외면과는 달리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간 고달픈 직업이 아니다. 취재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이고, 원고 마감시간 지키느라 끼니를 제 때에 찾아 먹을 수조차 없다.

그렇다고 돈이라도 ‘펑펑’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재주마저 없는 사람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스스로를 ‘3D직종 종사자’라고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자긍심만 아니었다면 기자라는 직업을 끝까지 붙들고 있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왕초가 되어 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랴.

말이 좋아 편집국장이지 사실은 글쟁이 아닌가.

그러나 편집국장은 여느 글쟁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우선 글의 파급 효과에서 나타난다. 신문 지면에 게재된 불과 1000여자의 글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때에 따라서는 정치권이 들썩거리고, 지역 사회가 요동치기도 한다. 그런 맛에 글을 쓴다.

게다가 기자들의 시각을 왕초의 시각에 맞추면 그 효과는 배가(倍加)된다. 아무리 기자들이 기사를 잘 작성했다고 해도 왕초의 시각과 맞지 않으면 그 기사는 지면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신문지면의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편집국장과 기자들 사이에 시각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 상식이다. 이런 면에서 편집국장은 또 여느 왕초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 각 정당의 대표는 물론이고, 소위 ‘제왕적 총재’라고 불리던 ‘3김시대’의 정당 대표 권한도 신문사 편집국장의 권한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신문사 편집국장은 한마디로 왕초다운 왕초의 권한을 유감 없이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왕초의 말 한마디로 정치권이 들썩이고 지역사회가 흔들거릴 만큼 파급효과가 있다면, 더구나 기자들의 시각을 조정해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하는 지침(指針)의 글이라면 더욱 그 책임이 막중해 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왕초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 기자들도 그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한 사람의 잘못이 모든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그런 책임을 가지고 시민일보의 ‘아침햇살’이라는 고정란에 글을 게재해 온지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넘어섰다.

그동안 본란을 통해 공무원노조를 지원하고 공무원노조 탄생에 기여한 일과 지방언론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 새정부의 각성을 이끌어 낸 일 등은 기억에 더욱 새롭다. 특히 본란이 ‘정치개혁’의 화두를 만들었고 이끌었던 일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행여 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독자들을 오판으로 이끌었던 일이 없었는지 새삼 되짚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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