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고백하면 바보?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7-28 19:01:59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우리나라에서 양심고백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정답은 바로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근태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2000만원을 받았다”는 양심고백 대가로 지난 24일 징역6월에 추징금 2000만원의 실형을 구형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해 3월, 2000년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권노갑 전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양심고백을 했다.

당시 김 의원은 “2000년 8월 최고위원 경선 당시 5억4000만원 가량을 사용했으며, 이중 2억4000여만원은 선관위에 공식 등록하지 못한 사실상 ‘불법 선거자금’이었고, 그중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물론 동일하게 권노갑 전 고문에게서 2000만원을 받은 정동영 의원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처럼 같은 사안이라도 김근태 의원처럼 양심고백하면 실형을, 정동영 의원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면 기소유예처분을 받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김 의원은 이날 차분하게, 그러나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로 “야만의 시대를 그대로 놔두고 나만 ‘선처’를 간청하지 않겠다”는 최후진술을 마쳤다.

김 의원은 진술 과정에서 “선거인단만 7만명, 잠재적 선거인단 숫자로는 150만이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지 5000만원 갖고 전국 선거하라는 것은 정말 코미디였다”며 “내가 왜 정치를 하는 것인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하게 되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양심고백을 한 뒤 대선후보 경선을 사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세상은, 그리고 정치권은 그런 그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웃으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는 그 아픔을 이렇게 토로했다.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해지도록 만드는 야만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꿈과 이상을 지키려고 하면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왕따’당하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실 지금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은 문제가 많다. 최근 불거져 나온 대선자금 논란도 현행법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당내 경선에서의 법과 현실의 괴리에 따른 어려움을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여야 모두 실정법을 온전히 지키면서 대선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것에 대해 누구하나 죄를 묻지 않는다.

양심고백을 하지 않는 한 그 죄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대로 놔두면 개선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양심고백을 해야 한다. 그것을 김의원이 해낸 것이다.

사실 김 의원의 양심고백은 한국정치의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에게 죄를 묻기에 앞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현실에 맞지 않는 법·제도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의 선고공판은 8월14일 오전 10시다. 필자는 법원에 그의 선처를 호소하는 바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