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동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9-23 19: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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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유종필씨는 이제 더 이상 ‘노무현의 입’이 아니다.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입’으로 활동했던 유종필 전 공보특보가 23일 원외 몫의 민주당 대변인으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대표직을 승계한 뒤 첫 작품으로 유씨를 발탁했다.

거세게 불어닥치는 ‘신당 불길’을 잡아 줄 소방수가 절실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실 서울 지역구 출신 26명의 민주당의원 가운데 이미 16명이 통합신당으로 합류를 선언해 이제 민주당에 남은 의원은 1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정대철 대표마저 국정감사 이후 통합신당에 합류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그럴 경우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분포도는 전체 45명 가운데 한나라당 19, 통합신당 17, 민주당 9명이 된다.

민주당으로서는 여간 초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민주당 원외인사들의 통합신당 합류선언도 ‘봇물’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에 유씨의 영입은 신당합류 연결 고리를 차단하는 방패막이로 충분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실제로 ‘노무현의 입’이 ‘민주당의 입으로’ 라는 선전은 효과면에서도 그만큼 파괴력이 있다. 한때 ‘노무현의 입’이었던 사람이 신당에 찬동하지 않는다는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유종필씨는 성격이 불같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성격으로 인해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을 때도 노 대통령에게 강한 어조로 쓴소리를 ‘왕왕’ 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그는 우리 시민일보와도 인연이 깊다. ‘단체장 누가 출마하나’ 시리즈 연재 당시에 정치부 기자와 언쟁을 벌이다 본사까지 찾아와 자신의 입장을 어필하고 돌아간 일이 있다. 노무현 후보 시절에는 본사와 인터뷰를 적극 주선하는 열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그런 열정이 노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당을 위해 쓰여질 판이다.

노 대통령이 사실상 통합신당을 지지하고 있는데, 측근이었던 사람으로서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유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과 맺은 사적인 인연이나 인간적인 관계는 훼손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정치노선 또한 사적인 관계 때문에 훼손할 수는 없다. 또 대변인으로서 주장을 펼 때,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비판하더라도 그건 정치노선과 정책에 관련된 것이지 인간적인 면과는 별개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적과 동지를 정확하게 구별해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통합신당에 합류한 인사들 가운데는 ‘후보단일화’라는 미명하에 노무현 후보 흔들기에 나섰던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됐다는 말이다.

이런 마당에 유 대변인 내정자의 ‘정치노선과 인간관계는 별개’라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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