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강한 선거법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9-29 18: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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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우리나라 선거법은 참으로 희한하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반면 약자에게는 더없이 매섭기 때문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지만 유독 선거법만은 예외인 듯 싶다.

실제로 내년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정치신인들이 국회의 정치관계법 개정협상 지연 때문에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당초 기대했던 ‘예비후보자제 도입’ 등의 불이익 해소제도 도입도 덩달아 늦춰지고 있는 까닭이다.

정치 신인들은 선관위가 선거관계법 개정의견을 통해 모든 출마예정자가 선거일전 120일부터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명함배포, 정책홍보 등 사전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후원금도 모집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일제히 환호했었다.

왜냐하면 현행법은 정치신인들로 하여금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인들은 사전선거운동 금지조항에 손발이 묶여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명함조차 돌릴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선거법은 현역 국회의원들에게는 최상의 법이다.

의원들은 의정보고회 등 `현역 프리미엄’을 적절히 활용하면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현역 국회의원은 아니더라도 지구당 위원장만 되어도 지구당 개편대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사전선거운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헌법재판소가 총선출마 단체장 사퇴시한을 선거일전 180일까지로 규정한 선거법 53조 3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려 단체장들이 사퇴 시한에 한결 여유를 갖게 됐다.

이로 인해 기성 정치인과 신인들간 선거운동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채, 강력한 경쟁자인 단체장만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선거법은 정치신인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법이 되어 버린 셈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선거법 개정은 너무나 시급한 사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우리 선거법은 ‘전과자를 양산하는 제도’라며 빈축을 사왔다. 특히 정치신인들에게 선거법은 지킬 수 없는 규정 투성이다. 명함돌리는 것은 고사하고, 유권자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방법조차 강구할 수 없다.

이들은 어떤 조항이든 재수(?) 없으면 걸리게 되어 있다.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 식의 규제조항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신당, 내분, 국회 국정감사 등을 이유로 개정협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오히려 기성 정치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치졸한 움직임 마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정치신인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정치개혁이 정치권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정치권은 이 선거법부터 개혁하는 일에 전력을 투구해야 할 것이다.

지구당 위원장 폐지나 공직후보 상향식 공천 등 당내 개혁도 시급하지만, 정치신인들을 얽매고 있는 ‘약자에 강한 선거법’의 개정은 그보다 더 시급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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