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팥죽과 청어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1-04 18: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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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만 옥 수도권부 국장대우(광명 주재) {ILINK:1} 11월은 참으로 쓸쓸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1년 가운데 제일 쓸쓸한 달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잎새처럼 12월이 남았기에 더욱 그렇다. 본격적인 겨울철로 들어서는 11월은 옛부터 동짓달로 불려졌다. 그래서 스산한 마음과 몸을 스스로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서 선조들은 겨울철을 맛으로,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선조는 11월의 전통음식과 무슨 음식으로 조상들을 숭배했는지 알아보자.

고사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주로 동짓달에는 궁중(宮中)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士大夫) 집안에서도 청어(靑魚)를 사당(祠堂)에 올리는 청어 천신(薦新)의 풍속이 행해졌다고 한다. 이는 청어가 푸른빛을 내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음식을 조상(祖上)에 올리려는 후손(後孫)들의 정성어린 풍속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때만 해도 청어는 황해도 해주(海州)와 경상도 통영(統營)이 유명했다.

청어를 실은 배가 한강에 들어오면 생선상인들이 거리를 누비며 청어 사라는 목청소리가 사람 사는 듯한 풍경(風磬)소리로 들린 시대. 그러나 한강의 이같은 유래는 아주 옛말이 되고 말았다. 한강에 돛단배를 띄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취중에 떠오르는 시조를 불러보던 그 옛날의 정겨운 선조들의 모습은 영원히 사라졌다. 또한 동짓달 하면 생각나는 동지(冬至)팥죽이 있다.

그러면 동지 팥죽은 어디에서 전해진 음식일까. 대부분 우리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동지팥죽은 중국에서 전해 오는 음식이다. 중국 요순시대(堯舜時代) 때, 형벌(刑罰)을 담당했던 인물로 알려진 공공씨(共工氏)에게서 유래됐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공공씨(共工氏)가 불초(不肖)한 자식을 두었으나 그가 평소에 팥을 무척 싫어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었기 때문에 그가 역귀(疫鬼)가 되어 인간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동짓날이 되면 팥으로 죽을 쑤어 역귀를 쫓는 풍속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는 붉은 빛은 양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붉은 색을 띠는 팥이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하는 음식으로 전래되어 잡귀를 내 쫓기 위해 팥죽을 사용해 왔다고도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기 전에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잡귀야 물러가라”를 외치며 팥죽을 뿌려 역귀와 잡귀를 몰아냈다.

그러나 이같이 유래된 음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우리 조상의 풍습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놓여 동짓달을 맞으며 더욱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따라서 올 동짓날에는 온 국민이 팥죽을 뿌려 건강한 국회,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는 국회, 거짓말하지 않는 선량, 오로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가 되어 달라고 기원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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