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그를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바로 어제가 그의 33주기 추도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라며 온몸을 불태운 지 벌써 33년이란 세월이 ‘훌쩍’지나가 버렸다는 말이다.
이날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 전태일 묘소 앞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박형규 목사는 “한알의 밀알은 보잘 것 없으나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며 “전 열사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한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삶은 치열했다. 어쩌면 그의 죽음조차도 치열한 ‘그의 삶’의 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기꺼이 ‘열사’라 부르며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순수한 영혼을 지닌 노동의 투사였으며, 한 ‘진실한’인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의 여동생 순옥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의 죽음으로 더 이상 노동자들이 죽는 일이 없어졌어야 하는데…”
그렇다. 그는 스스로 온몸에 불을 지르며,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노동자들이 탄생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배달호 김주익 이현중 이용석 곽재규씨 등 ‘생존권 보호’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어느 노동자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임금과 퇴직금, 신원보증인의 재산을 가압류 당해보면 그 분들의 심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사정이 너무나 절박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손해배상소송, 가압류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습은 33년 전의 노사문화에 비해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또 노사정간의 불신으로 인한 갈등을 없애기 위해 경영자도 한발 물러서 노동자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하는 데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사실 경영자측이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자들과 서로 동반자적인 관계를 이룩해 나간다면 불신은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아직 기본적인 복지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방편을 선택할 여지가 없는 노동자들은 죽음으로서 항변하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하려면 이제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손배소·가압류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전태일 열사가 탄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말이다. 우리의 이웃 노동자, 정부가 정녕 그들의 죽음을 방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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