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의총’이라니 …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1-24 19: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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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한나라당은 24일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지도부의 ‘재의 거부’ 방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이날 의원들은 박수로 지도부에 대한 지지를 결의하고 의총을 서둘러 종료했다. 그 시간은 길어야 10여분 안팎이다.

의원직 총사퇴, 장외투쟁, 예산심의 거부 등 이날 논의된 묵직묵직한 현안에 비하면 그야말로 ‘번개 불에 콩 굽기’다.

물론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야 할 만큼 한나라당 내외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날 ‘10분 의총’을 보고 한나라당의 단합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선 ‘재의 정면 돌파’를 주장하고 있는 홍사덕 원내총무의 이날 ‘침묵’이 반드시 동의를 뜻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필자가 알고 있는 몇몇 소장파 의원들도 지도부의 이런 말도 안 되는 강경 방침에 불만을 품고 있는 상태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강경 투쟁이 자칫 국회의 시급한 현안처리 지연으로 이어지게 되면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매가 되어 돌아온다. 특검은 특검대로 무산되고 여론의 지지마저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의 우려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토록 ‘재의결’ 의지를 표명하던 당이 당론을 하루아침에 바꾸면서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무책임하게 정국을 이끄는 대통령에게 야당과 국회가 끌려가서는 안된다”면서 전면투쟁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필자는 무책임하게 말바꾸기를 시도하는 정당에 국민이 끌려가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앞서는 걸 어찌하겠는가. 이게 어디 필자만의 생각이겠는가.

실제로 한나라당은 지난 11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최병렬 대표를 비롯해 이재오 사무총장까지 재의결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심지어 최 대표는 KBS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노 대통령이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다시 재의하겠다”고 말한 일까지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거부하면 전면 투쟁”하겠다고 말을 바꾸면서 그에 대한 해명조차 없으니, 국민이 이런 정당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당 의총만 통과되면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든 안중에 없다는 식의 발상이라면 위험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의총을 재소집해서라도 ‘번개 불에 콩 구워먹는 식’으로 진행된 24일의 의총결의를 재론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다. 그토록 중차대한 일을 단 한번의 논의 과정도 없이 10분만에 만장일치의 박수로 의결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가야할 길이 멀다고 들러가는 길을 질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10분 아니라 10시간이 걸려도 우리 국민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줄만큼 넉넉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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