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의장께 告함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5-03 20: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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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필자는 심정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도 사표방지 심리로 인해 17대 총선에서 기꺼이 열린우리당에게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 의장은 여러 번 필자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첫 번째 실망사건은 전국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 대표경선에서 ‘전북중심의 당’ 운운하면서 지역감정을 유발한 일이다. 두 번째는 열린우리당의 노선을 ‘실용주의’로 채택, 사실상 개혁의지를 후퇴시켰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 의장은 이번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나는 왜 파병에 찬성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필자를 또 한번 실망시키고 말았다.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나의 양심과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 아니냐’는 불안감 사이에서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 사이에서 정치인은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가에 대한 베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심정 윤리’는 선과 악의 구분 사이에서 선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 윤리’는 그 정치적 결과에 대한 무제한의 책임을 지는 태도를 뜻한다.” 물론 정 의장인들 왜 고민과 번민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의 고백처럼 과연 이라크 파병이 ‘책임윤리’에서 기인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냉혹한 국제 사회에서, 북핵 문제와 한미 관계의 안정화가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처지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파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처음부터 오류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조차 이라크 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당시와는 상황이 사뭇 달라져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팔루자서 하룻새에 800명 시신 이장”이라는 기가 막힐 긴급 외신이 들어오는가 하면, “곤봉으로 팔 부러뜨리고 민간인도 고문”이라는 눈물겨운 소식도 들려오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이라크포로 고문 사진” 이 보도되어 세계적으로 파문이 일고 있는 상황임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런 때에 우리 군인이 파병된다고 해서 분노에 치를 떨고 있는 그들 이라크 민중이 과연 환영해 주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들 민중은 우리 군인을 침략군인 미군의 우방군으로 인식하고 적대시 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렇다면 정 의장이 말하는 ‘심정 윤리’는 무엇이고 ‘책임 윤리’는 무엇인가.

필자가 판단하기에 하룻새에 800명의 시신을 이장시키는 그런 비 인륜적 전쟁마당에 우리가 끼지 않는 것이 ‘심정윤리’이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런 전쟁마당에 끼어 아까운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책임윤리’에 맞다고 생각하는 데 정 의장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전히 이라크 파병을 찬성하는 것이 ‘책임윤리’에 맞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필자는 다시 한번 정 의장에게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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