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국가기밀 지침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1-12 2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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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정부가 지난 12월 군사외교 대북관계의 국가기밀 사항에 대해 국회에 자료 제출은 물론 대면(對面)설명까지 거부할 수 있도록 ‘국회 및 당정 협조 업무처리 지침(협조지침)’을 개정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황당하다.

이는 한마디로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정부의 오만한 도전’인 것이다.

물론 최근 국회의원의 국가기밀누설과 관련, 여러가지 말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볼 때 이 같은 정부의 국가기밀보호 강화방침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비밀과 비공개를 지정함에 있어 지나치게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해왔다.

실제 비밀로 분류된 기록이나 정보 중에서 일반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상당수가 사실상 비밀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들 아니었는가.

이는 문서생산자가 자의적으로 비밀로 분류할 수 있고, 과장급 실무자들이 마음대로 비밀문서를 해제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비밀문서 분류 시스템이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일 것이다.

오죽하면 노회찬 의원이 “행정부 과장급·국장급의 판단에 따라 기밀문서로 분류되는 대부분은, 국가안보와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숨기고픈 치부(恥部)들 뿐”이라고 힐난하고 나섰겠는가.

실제로 국방부가 분류한 군사기밀 가운데 1급은 9건에 불과하고 2급은 22만9700여건, 3급은 36만7900여건에 달한다. 이외 ‘대외비’로 분류되는 기밀문서도 엄청난 양이라고 한다. 외교통상부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생산되는 문서 대부분을 기밀문서로 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국가기밀’ 대부분이 ‘국가기밀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까지 숨겨야 하는 ‘국가기밀’이 사실은 과장급 이하의 실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특히 정부의 지침은 국가기밀을 이유로 정부가 국회의 통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 많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기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유일한 수단은 국회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 같은 허무맹랑한 지침을 내려 국회에 자료제출 자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으니, 국회가 어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다분히 국회의 감시기능을 축소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으로서 필자는 정부의 지침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번 지침은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다.

미국은 보호의 필요성보다 정보의 공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기밀 분류를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는 정부의 기밀문서 지정 및 관리, 폐기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때가 됐다.

‘비밀주의’의 그늘아래 공공연하게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국익에도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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