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사이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2-27 20: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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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 승 편집국장 {ILINK:1} 언론의 진실보도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 24일 충남 공주·연기지역에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키로 한 여야 합의에 대해 “군대라도 동원해서 막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 시장의 ‘군대동원’ 발언이 진실이라면 이는 보통 섬뜩한 발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보도 내용은 사실이긴 하나 진실은 아니다.

따라서 진실이 아닌 이 보도를 바탕으로 열린우리당이 이 시장을 향해 “5.16 쿠데타 세력의 수제자다운 망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기사작성에 있어서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1년 전 연합뉴스는 ‘워싱턴포스트’(WP)발 기사임을 밝히면서 ‘盧 자신 反부패 운동의 표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당시 연합뉴스는 거두절미하고 WP가 “한국인들은 노(盧)에 철저히 환멸을 느껴 검사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는 보도를 전했다.

물론 연합뉴스의 보도내용은 사실이다. WP의 보도에는 그런 내용도 일부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진실’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WP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는 12개월 동안 유례가 없을 정도의 검찰 자율을 보장해 한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부패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노력은 개혁성향의 검찰을 자신의 문 앞까지 이끌었다.”
즉 노 대통령이 스스로 표적이 될 정도로 ‘검찰독립’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주된 골자다. 그런데 일부 특정 사실만 나열함으로 인해 주제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사실이긴 하나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이런 잘못된 보도로 인해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이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시장은 지난 24일 강북정수장을 둘러본 뒤 정수장 구내식당에서 기자들과 오찬을 갖고 행정 부처 일부 이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당시 기자들이 `손학규 지사는 찬성하고, 한나라당에서 동의했는데 서울시장의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어떻게 할까. 군대라도 동원할까?”라며 농담조로 맞받아 친 것이 전부였다.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이 시장의 발언을 `특별한 대책이 없어 답답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즉 이 시장이 군대동원을 운운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일부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함으로써 본말이 전도되고 말았다. 따라서 그 보도는 거짓이다.

언론인은 단순한 사실 전달자이기에 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보여야하는 직업인이다. 이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한 사실보도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사실보도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그 기자는 책임을 면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진실을 왜곡시켰다는 점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인은 ‘사실’과 ‘진실’사이에서 당연히 ‘진실’을 택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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