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저녁부터 6일 새벽까지 거대한 '촛불 물결'이 다시 거리를 메운 것이다.
그 군중들 사이에는 신부님도 보였고, 수녀님도 보였다.
스님들도 그 자리에 있었고, 모르긴 몰라도 목사님들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어린 여학생들은 물론, 유모차를 끌고 있는 어머니들도 눈에 띄었다.
민노총, 전교조, 전국연합과 같은 정치적 색채가 짙은 세력도 거기에 끼어 있겠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역시 선량한 시민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종교계 인사들이 가장 앞줄에서 행진을 이끈 사실만 보더라도 MB 정부의 ‘좌파주도 촛불시위’ 주장이 얼마나 심각한 사실왜곡임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그 한 귀퉁이에 어김없이 ‘촛불시위 반대’ 무리가 동원됐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르신부대다. 손가락으로 그 숫자를 일일이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참가자도 미미하다.
웃기는 것은 그들이 마치 자신들만이 ‘애국우파’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칭 우파논객들 사이에서 일부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그들을 이끌라는 어리석은 주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박 전 대표에게 거대한 촛불시위에 맞서 어르신 동원부대의 장수가 되라고 요구하는 무리들은 결코, 박 전 대표를 사랑하는 지지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박 전 대표에게 침몰하는 MB와 같은 운명이 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그를 ‘보수의 희망’으로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남은 4년 몇 개월 후, MB와 함께 보수 세력도 망하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MB와 박근혜 전 대표를 서로 분리하는 게 낫다.
그래야만 부패한 보수 정권이 망하더라도 깨끗한 보수 세력은 다시 한 번 박근혜 전 대표를 내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보수대결집’을 주장하며, 박 전 대표에게 화약고를 짊어지고 불 섶에 뛰어들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박 전 대표 지지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MB와 박 전 대표를 어떻게 분리하는 게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MB를 한나라당에서 출당조치 하는 것이다.
MB의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덩달아 한나라당 지지율도 급락하고 말았다.
한때 민주당 지지율보다 두 배에서 세배 가까이 앞서가던 한나라당 지지율은 지금 민주당 보다 겨우 오차범위를 조금 벗어난 수준에서 앞서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라면 언제 역전될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이미 ‘MB 사당화’ 되어 버린 한나라당에서 과연 그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2년 후 지방선거가 있다. 그리고 중간에 재.보궐선거도 있다. 이런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려면, ‘MB’라는 거추장스러운 짐을 벗어버려야 한다.
이 점을 친박논객들이 부각시키면서 계속 당내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MB 자진탈당’이라는 부차적인 효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임기 말 자신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탈당’을 결행한 사례들이 많이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이 전부 여당을 탈당한 전력이 있다.
물론 당 장악 욕심이 유별난 MB가 과연 이 같은 결단을 내려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MB의 당 장악력은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홍사덕.서청원.김무성 의원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한나라당에 복당할 경우, 그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만일 이런 결과를 두려워하면서 한나라당이 친박 복당 문제에 대해 ‘일괄복당’이 아니라 ‘선별복당’ 방식을 고집할 경우, 차라리 ‘신당 창당’의 깃발을 올리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차선책이다. 그리고 아직은 시간이 충분하다.
따라서 2010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비록 미니여당으로 전락할지라도 보수 세력의 표심을 갈라먹을 수 있는 이런 선택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번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 박 전 대표가 할 수 있는 발언이라면, “촛불시위 주최 측에서 '국민 승리'를 선포하고 집회를 마무리한 만큼, 이제는 천막을 거두고 정부의 답변을 기다려 보자. 그래도 정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 때 다시 촛불을 치켜들자”는 정도일 것이다.
그에게 촛불시위 반대 선봉장이 되라는 이른바 ‘수구꼴통’들의 요구는 당연히 무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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