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스탠포드 방문1.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원 신 보 영
지난주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가 이곳 스탠포드를 다녀갔다.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가끔 있는 일로 그리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얼마 전에는 정동영 전의장이 이곳을 방문했었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나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의원,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나 원유철 의원 등도 이곳 생활을 잠시 했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으니 박근혜 전대표의 방문은 특별히 비중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문기간 동안 집중된 세간의 이목은 그녀가 내놓은 말 한마디 그리고 행동거지 하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었다.
특히 연구소 동료들의 강연 후 뒷담에서 그녀의 정치 내공이 범인의 수준을 초월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강연장에는 많은 학자들 그리고 지역인사들이 자리했다.
그들에게는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교포들의 열광적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 명의 평의원에 불과하지 않은가?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인 것도 아닌데, 그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이성만으로의 설명이 힘들다.
아마 평소 그녀로부터 풍겨 나오는 감성의 효소가 바라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케 하는 부분이다.
평생을 원칙이라는 틀 안에서 절제된 생활만을 해온 그녀일 것이다. 그녀의 인생을 돌아본다면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특히 얼굴에 깊게 드리워진 긴 칼자국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에 대한 보호본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딸로서 태어나 참으로 험한 인생을 살아온 이가 바로 그녀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도 그녀는 누구보다 강한 모습으로 정국을 주도 하고 있다.
계속해서 본인의 믿음을 쫓고 있고, 또 그녀의 지지자들은 그녀의 믿음을 따르고 있다.
그녀에 대한 지지와 애정이 강연 장 에서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많은 교포들이 강연장을 찾았다.
멀리 로스앤젤레스나 베이커스필드 등에서 대여섯 시간씩 운전을 하며 찾아온 이도 있었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뿐 아니라 교포사회에서도 어김없이 이어 지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강연장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주변은 짧은 눈인사라도 전하려는 인파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또 국내에서부터 동행한 많은 수의 취재진과 더불어 현지 취재진의 가세한 모습은 그야말로 그녀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강연 후 이어진 다과회에서의 상황은 굳이 글로 옮기지 않더라도 어림짐작 할 수 있으리라.
그녀의 강연은 영어로 시작 되었다.
평소 쓰지 않는 영어기에 진행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텐데, 초반 발음이 약간 강했던 것을 제외하곤, 시종일관 그녀 특유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강연 중반, 같은 단어를 두세 번 정도 반복하며 청중에게 발음교정을 요청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을 때는 좀 귀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직 되었던 장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기도 했다.
강연은 대북문제와 한미관계를 주로 해서 진행 되었다. 그녀는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단호했다.
대북분제에 있어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원칙을 두며 북한의 일방적인 태도에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과, 혈맹으로서의 한미 관계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 하였다.
촛불 시위에 관한 청중의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정부의 부적절한 조치에 화가 난 국민들의 목소리였을 뿐, 근본은 반미감정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강연이 끝난 뒤, 연구소 동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매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본 박 전대표의 모습은 단면에 불과 할지 모르지만, 미래의 한 국가 지도자로서의 면모와 가능성을 충분히 수긍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진보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60년대와 70년대 초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반전주의자들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었으며, 탈사회적 행동의 히피문화가 발생한 곳이 또한 이곳이다.
게다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텃밭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바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배출에는 실패 한 바가 있다.
그런 이들에게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여풍은 꽤나 자극적이었던 모양이다.
대부분 한국 통, 적어도 아시아 전문으로 불리는 이곳 연구진들은 그녀가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같이 해온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역사의 그늘 속에서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우수를 읽어내며 그녀가 강해 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 공감을 보인다. 과거 국무성에서 한국과장을 지냈던 한 동료는 필자에게 그녀로부터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빈틈없는 행보를 통해 과거 그녀의 아버지가 고도성장으로 간과했던 공백을 채우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했다.
바로 그녀가 원칙을 지키려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방문 일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재·보궐 선거 패배와 맞물린 당내 갈등 문제로 혼란한 정국을 맞고 있어 그녀의 방문 의미가 많이 퇴색 되었지만, 이곳 교민들과 특히 스탠퍼드 대학의 유수한 학자들에게 남겨진 그녀의 자취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 속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몽상만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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