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05-18 16: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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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남자 전여옥이닷!
앗, 남자 전여옥이닷!
이영란 정치행정부장

"지난 100년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북미관계의 변화를 통해 동북아시아가 경천동지할 상황이고 한반도의 역사를 변화시킬 계기가 왔는데 일부에서는 햇볕정책 이전의 대결적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반북적 시각을 갖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쪽에 운하나 파겠다고 하는 반역사적, 반현실적 인식을 가진 분들이 있다. 이번 대선은 해방 이후, 민주세력의 정권 교체 이후 겨우 정착된 민주주의가 내용적으로 선진화할 기회다."
이 발언의 당사자는 지난 18대 대선 당시 반MB진영의 리더로 활동하던 황석영씨다. 실제로 그는 2007년 대선을 한달여 남겨두고 백낙청 교수 등 진보 진영의 16인 원로의 이름으로 반한나라당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는 ‘역사를 퇴행시키는 반민주수구 냉전세력’으로 규정하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그런 황석영씨의 화려한 변신 행보가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면서 잇단 발언으로 뉴스메이커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서 그런지 대단히 적극적이고 파격적 행보를 선보여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중도실용 노선인 이명박 정부를 돕겠다”는 발언으로 자신의 변화를 확인시켜줬다. 실제로 그가 유라시아 특임대사로 내정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황씨를 진보진영에서 곱게 볼 리 만무다. 당연히 그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황씨의 해명성 인터뷰는 글 쓰는 작가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궁색하다.
황씨 스스로 밝힌 이명박 정부의 조력자가 되기로 한 배경은 ▲원래 이명박 대통령과 친한 사이여서 믿는다(93년, 94년 공주교도소 복역 중일 때 두 번이나 면회를 왔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이 ‘나는 중도실용주의자’ 라고 했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믿는다는 것 두 가지다. 그래서 그를 돕기로 했다는 요지다.
정작 지난 2007년 대선 때 왜 그렇게 절친한 이명박 후보에 쌍수를 들고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명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황씨는 그 스스로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자초한 일이니 누굴 원망할 처지도 아닌 것 같다.
구차한 변명이 오히려 기름이라도 부은 듯 비난을 초래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시절 진보성향 인사들이 나이가 들면서 보수로 전향되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쉽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황씨는 변신이 아닌 변절의 영역으로 자신을 끌어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뒷모습이 더 구차해 보인다. 씁쓸하다.

이전에도 황씨와 비슷한 변화를 보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여옥 의원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수첩공주라며 맹공을 퍼붓던 그녀는 어느 사이 '박근혜의 입'의 자리를 꿰차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화려한 정계진입에 성공했다.
지난 2004년 박근혜 전 대표가 당 전면에 나선 이후 2005년 11월까지 20개월을 '박 전 대표의 대변인'을 지낸 바 있다.
그런 그가 ‘이명박 대세론’이 전국을 휩쓸던 때에 맞춰 어느 날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이명박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그 어떤 지뢰밭, 폭풍우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라며 이 후보에 대해 강한 지지의사를 표명하며 갑자기 등을 돌렸다.
표절시비 등 심심할만하면 퇴락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최근 국회 폭행사건으로 거론되는 것 외에 전여옥이라는 이름은 사실상 잊혀져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석영 논란’를 지켜보노라니 갑자기 전여옥 의원이 생각났다.
최소한 황씨를, 이명박 정부의 성은에 감읍해하는 남자 전여옥의 모습으로 만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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