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 경찰.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06-07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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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원 신 보 영
아침 일찍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모르는 전화 번호이기에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게 되었다.

이곳 스탠포드에서 생활을 시작한지 10여 개월, 그 동안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들이 콜 센터의 광고 전화였기에 잠시 망설였던 것이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잠시 나를 놀라게 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신분을 팔로알토 경찰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경찰로부터의 전화, 아침부터 나를 긴장을 시키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걱정스러운 생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잠시 후 궁금증이 풀렸다.

귀를 열고 정신을 차려 그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지난 밤 늦은 시간에 시내에서 주방용 칼을 소지한 강도가 시민을 상해하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주의를 요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그 경찰서 직원은 사건의 경위와 용의자의 신상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하고 각별한 주의와 함께 수사에 협조를 구하는 당부를 남기면서 통화를 끝냈다.

조금은 어이가 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약간의 감동도 함께 했다.

연구소에 나와 다른 동료들에게 이런 얘기를 전하니 모두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 팔로알토, 가구당 평균 3명을 가름한다 해도 2만여 통의 전화를 연결했다는 계산인데. 응답을 하지 않는 가구에 대해서는 메시지까지 남겨야 하니 보통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95명의 경찰 인력으로 수만 통의 전화를 소화하다니 대체 그 정성을 갸륵하게 봐 줘야 할지 아님 한심하게 평가해야 할지 조금은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다.

차리리 그 시간 동안 수사에 전념하고 용의자를 쫓았어야 했던 게 아닌가 말이다.

최근, 경찰 총격에 의해 한국인 희생자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미국경찰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었었다.

폭력과 살인에 얼룩진 모습, 그리고 총기를 겨누며 시민들을 위협하는 강압적인 모습, 바로 그런 모습의 경찰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특히 위와 같은 통화는 본래 취지와 다르게 더욱더 경찰임무의 핵심을 비껴 가는듯한 모습으로 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할 일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 인력 총원 95명, 그 중 삼분의 일은 사무행정을 맡아야 할 것이고, 또 삼분의 일은 사건 수사와 같은 업무, 또 나머지 삼분의 일은 교통 단속업무를 담당 했었을 텐데.

더욱이 24시간의 풀 서비스를 기본으로 하는 경찰업무의 특성으로 총원 대비 삼분의 일은 비번 상태에 있었다고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곳 경찰업무의 각종 지표들을 살펴 보게 되었다.

지난 5년간 살인 사건 6건, 부녀자 성폭행 30건, 강도211건, 그리고9,356건의 단순 절도가 기록 되어 있었다.

년 평균 65,000 통의 신고 전화가 접수 되었고 이중 1,300 통의 전화가 경찰 서비스에 대한 불만 신고였다고 한다.

이 정도의 기록이면 인근 도시들에 비해 사정이 매우 좋은 편이다.

사실 가까이 인접해 있는 A 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살인사건과 강도사건으로 뉴욕이나 시카고의 우범 지대를 연상케 해준다.

매일 아침 로컬 뉴스에서 보도되는 흉측한 범행 사건들은 거의 그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1월1일 전철역 경찰 총격 사건으로 흑인시민이 사망한 곳도, 그리고 범인의 총격으로 경찰관 3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한 곳 도 바로 그 지역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접하면서 지방자치, 경찰자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경찰의 모습은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미국 경찰에 대한 편견을 이제는 좀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순간이다.

다 민족, 다 인종 국가의 대명사인 이곳 미국에서, 너무나 다양한 문화를 한 곳에 집중 시켜놓다 보니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말도 많고, 사건 사고도 많다.

이에 대한 경찰의 반응이나 대응도 가지각색임에 틀림이 없다.

그날 아침의 전화는 이런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평가 하게 되었다.

그 전화 한 통! 확실히 시간 낭비, 인력낭비는 아니었다.

그 동안 폭력경찰, 살인경찰 등의 나쁜 이미지로 남아 있던 미국경찰의 모습을 털털하고 순박한 우리 동네 파출소 순경 아저씨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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