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090623 (웹)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06-22 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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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
잠수교가 사라졌다

'공화정치는 사치로 끝나고 군주정치는 빈곤으로 끝난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한 말이다.

잠수교를 지나면서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두어 달 전 느닷없이 잠수교의 길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편도 2차선의 길이 1차선으로 줄면서 차선폭도 좁아졌고 그나마 직선로가 여기저기 휘어졌다.

잠수교 절반을 자전거와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로 만들면서, 옆의 둔치로 이어지게 몇 군데 횡단보도를 내고 버스정류장을 만들었다.

잠수교 남쪽 입구에도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들어섰다.

이러니 이제 자동차가 건너는 다리로는 기능이 대폭 떨어졌다.

출퇴근 시간대엔 시내 도로처럼 차가 밀려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잠수교 위 반포대교 난간에 줄지어 설치한 분수대다.

바람이 불면 잠수교를 지나는 차들은 그 분수대에서 날려오는 물을 뒤집어쓴다.

그래도 밤에 멀리서 보면 원색조명과 함께 일제히 물을 뿜어대는 다리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잠수교는 전시(戰時)에 전차가 도강하는 다리로 알려졌다.

그러던 것이 이제 서울의 주요 교통망이 되어 있다.

그 다리를 이렇게 절단내버린 것이다.

여기에 서울 시민들, 그 중에서도 잠수교를 다니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은 흔적은 없다.

하긴 반포동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강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니 서울시의 '한강르네쌍스'라는 희한한 조어(造語)가 마음에 들 것이다.
그러나 잠수교를 이용하던 수많은 시민들의,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로 갈 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내실 없이 전시효과만을 노리는 행정을 전시행정이라 한다.

보기 좋고 눈에 띄는 일이지만, 전시행정은 얼마 못가 폐단이 드러난다.

숭례문 개방이 대표적이다.

잔디광장을 만들고 조선시대 관군 복장을 한 이들이 영국의 근위병 행사처럼 의장 행사를 벌였다.

밤에는 제대로 지키지도 않아 노숙자들이 숭례문 전각에 올라가 잠도 자고 술판도 벌이고 심지어 라면도 끓여 먹었다.

서울시청에서 지척에 있는 국보1호는 이러다 불에 타버렸다.

청계천 복원 역시 전시행정이긴 마찬가지다.

종로와 을지로에 지하철이 들어서면서 청계천은 장마철 외엔 물이 흐르지 않은 사천(死川)이 되었다.

박대통령 당시 청계천을 복개할 때는 열악한 도로율로 인해 길로 쓸 목적이었다.

청계로는 서울의 동부와 도심을 잇는 동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제 복원 이후 지금 편도 2차선은 도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고가도로를 포함해서 12차로나 되던 길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서울의 동부는 섬이 되어가고 있다.

물이 없으니 비싼 전기 값을 물며 인공으로 끌어다 쓰지만, 우선은 도심에 물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그럴 듯 해보여 수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

그러나 녹조가 끼고 관리비도 만만치 않게 든다. 사실 사천이 되었으니 서울의 교통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흙을 메꿔 도로로 써야 했다.

꼭 복원을 하고 싶었다면 인왕산 지하수라도 끌어와야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려 임기 내에 마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버스중앙차로는 무질서했던 버스정류장을 없애고 서민들의 발인 버스를 막히지 않고 달리게 했지만 대신 승용차를 운행하는 시민들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이러니 생산성 높은 사람들의 시간을 뺏어 생산성 낮은 사람들에게 준, '좌파교통정책'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군다나 평소 전혀 막히지 않던 몇몇 도로가 버스중앙차로가 들어서면서 하루 종일 막히는 걸 보면서 서울시에서 왜 버스중앙차로를 계속 확대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은 대개 서울시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진행된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모든 지자체가 눈에 보이는 행정을 펴기에 여념이 없다.

경기도의 영어마을은 전시행정이 얼마나 폐해가 큰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구청 같은 기초자치단체들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꿔 깔고 비싼 석재로 보도 가장자리를 단장한다. 축제가 열리지 않는 시군이 없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지었다가 팽개쳐진 테마파크도 한둘이 아니다.

가동률이 5%가 안 되는 공항도 여럿 있다.

비단 이런 시설이나 행사 외에도 아무런 효용이 없는 제도도 많다. 이렇게 전시행정이 난무하는 것은 그런 가시적인 '성과'들이 선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잠수교를 힘들게 건너면서 다시 클라크가 한 말을 떠올린다.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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