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의 미래 대응전략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 차별화된 북핵정책, 대북정책의 필요성
2009년 봄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연이은 2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는 중대한 전기를 맞게 되었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북한 정권이 2012년에 문을 열겠다는 ‘강성대국’의 실체가 분명해졌다. 김정일의 강성대국은 주민을 배불리 먹이고 잘살게 하는 나라가 아니라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군사강국’인 것이다. 3대 부자세습에 성공하기 위해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다는 것이 김정일의 생각인 것 같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대북정책, 북핵정책이 필요하다.
현 시기 우리 사회에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둘러싼 정책의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간 햇볕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소위, ‘북한문제’(북한 정권이 야기하는 제반 문제와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각종 대내외적 문제)를 둘러싸고 남남갈등이 증폭되고 국민화합이 저해되었다. 따라서 과거 정부 정책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선명성과 부각시키는 것은 국민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와 다른 관점과 철학을 가진 새로운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공화당의 부시가 클린턴을 비판하면서 내세웠던 소위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이 비판을 받은 것은 이전 정부와의 정책적 차별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차별화된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차별화를 잘 하고 차별화된 정책을 잘 집행해야 한다. 차별화되지 못한 대북정책은 생명력과 호소력을 잃은 정책이다. 이런 정책으로는 과거의 재판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뿐 아니라 정부가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북한의 대남전략에 끌려 다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물론 차별화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6·23 평화통일 선언 이후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대북포용정책이라는 큰 틀을 지켜왔다. 대북정책의 차별화는 이런 큰 틀을 계승하고 연속성을 유지하되, 지난 10년 정부의 정책적 오류와 실패를 분석·파악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면서 포용정책을 보완·발전시키는 차원에서의 차별화이다. 대북정책의 차별화가 가장 시급한 분야가 바로 북핵문제와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한 교류협력 분야이다.
II. 새로운 북핵 해법의 필요성
2차 핵실험을 통해서 북한의 핵개발 의도에 대하여 그동안에 존재했던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예를 들어, 부시 행정부의 경우 대화를 통해서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생각과 의도를 확인하겠다는 것을 6자회담의 중요한 명분으로 제시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미국의 대북 위협론이 확산되면서 북한 핵은 체제유지를 위한 대미 협상용이라는 인식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으로 북한의 궁극적인 목표가 핵보유, 특히 미사일 탑재용 소형 핵탄두의 개발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북한이 2012년에 문을 열겠다는 강성대국의 실체가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군사강국임이 입증된 것이다. 2차 핵실험 직후 발표된 조선중앙통신 보도도 “이번 핵실험 성공으로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 위한 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리게 되었다”고 선언한바 있다.
2차 핵실험으로 북한 정권의 핵보유 의지가 최종 확인된 만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가정과 평가에 기초한 새로운 북핵 해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6자회담을 어떻게 살리고 기존 6자회담 합의에 따라서 단계별로 어떻게 북핵을 폐기시킬 것인가 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대오각성과 심기일전이다. ‘왜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뼈를 깎는 반성을 토대로 교훈과 시사점을 습득한 후에 새로운 정책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로 잠시 중단되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1990년대 후반부터 공개, 비공개적으로 재개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당시 우리 정부는 자체 정보력, 미국의 정보협조 및 파키스탄 등 관련국들의 정보제공을 토대로 북한의 핵개발 활동에 대해서 상당부분 파악하고 있었지만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수수방관하면서 오늘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마치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며 맥 놓고 있다가 가래로도 막지 못하고 급기야 안보의 둑이 터진 것이 작금의 북핵사태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10년 정부의 실패한 북핵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교훈을 도출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목표 하에, 북핵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북핵정책은 6자회담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6자회담이 실패하면 우리 정부가 할 일이 없다면서 6자회담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성역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인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고 나선 마당에 6자회담의 장래가 매우 어둡다는 엄연한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과거 클린턴 대통령이 제의한 4자회담을 클린턴이 물러나자 거부했듯이, 북한은 6자회담을 만든 부시가 물러나자 바로 회담을 거부한 것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6자회담을 추진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으나 6자회담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정부차원의 대책도 준비해야 한다. 북핵상황의 전개 시나리오를 단순하게 추정하더라도,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을 폐기할 확률과 핵보유를 고집할 확률은 ‘50 : 50’이다. 따라서 6자회담이 전자에 대처하는 수단이라면 북한이 핵을 고집할 경우에 대한 대책도 6자회담과 같은 비중으로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쩌면 남북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남한은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핵을 가진 북한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큰 틀의 대북전략을 통일전략과 연계해서 수립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중간평가도 필요하다. ‘6자회담은 지고의 선’이라는 단순한 사고에서 탈피해서, 종합적 국익의 관점에서 지난 6년간 진행된 6자회담의 합의과정과 이행현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평가해서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해석과 입장이 나와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미 오바마 행정부에게 우리의 확고한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향후 북핵폐기를 위한 한·미 협력과정에서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6자회담에 대한 중간평가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III. 새로운 대북정책의 토대
1. 2008년의 역사적 좌표에 대한 각성
대북·통일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의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10년 정부와 정통보수를 기반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가 가장 차별화되는 분야가 바로 북한문제이며, 건국 이후 보수이념이 압도했던 한국사회가 지난 10년간 가장 크게 홍역을 치렀던 분야도 바로 북한·통일 문제이다.
건국 이후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지하화·음성화되었던 친북·반미·좌파 활동이 공개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된 지난 10년 동안, 통일문제를 둘러싼 남남갈등과 과도한 반미감정의 표출 등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일반 국민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서 막연하게 가졌던 감상적인 환상이 깨지는 성과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2000년 정상회담 직후 우리사회에서 나타났던 ‘김정일 신드롬’이 2007년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무분별한 대북지원, 김정일 비위 맞추기와 대북 저자세, 북한의 핵개발 등으로 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하고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소위, ‘대북 퍼주기 피로증후군’이 발생했으며, 북한문제에 대한 여론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는 경향이 나타났고, 결국 이런 민심이 2007년 대선 결과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즉 지난 10년의 시간은 정부의 단속과 규제에서 벗어난 국민여론이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좌파사상을 접하는 실험의 기간이었지만, 그 폐단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 다시 원래의 보수로 회기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2007년 12월이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대북 무력사용 불사’ 내지는 ‘親美·從美’와 같이 과거 보수정권의 고정관념들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통해 성숙한 국민여론의 수준을 감안할 때, 앞으로 무력사용 등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국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통일방안이, 그리고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 설정을 통해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국익을 실현할 수 있는 선진외교의 자세가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2.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평가
‘6·15, 10·4 선언’이 법적·절차적으로 문제는 없었는가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었다면 시정함으로써, 두 선언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혼란을 없애고 북한 정권의 조건없는 이행요구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의 남북대화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 이전의 남북대화와 역사적·법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 체결된 남북간 합의에는 그 이전 정부에서 체결된 합의를 반드시 언급함으로써 합의정신을 계승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6·15 공동선언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남북기본합의서는 7·4 공동성명을 명시하고 있으나, 6·15 및 10·4 공동선언은 기본합의서와 7·4 공동성명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측은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촉구했으나 김정일이 본인의 서명이 없는 문건은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했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남측이 기본합의서 이행 문제를 제기했으나 북측이 거부했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6·15 및 10·4 선언을 고정불변의 조건으로 인식하지 말고, 남북대화의 역사적 맥락과 법적·절차적 차원에서 그 의미와 문제점을 재평가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남남갈등을 치유하는 일이다.
가. 6·15 공동선언의 문제점
6·15 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사이의 유사성을 확인한 것은 남한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 하에서는 합의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남한과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의 통일방안 사이에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 6·15 선언 제2항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헌법 제4조에 배치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과 다른 방안을 갖고서 6·15 공동선언에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6·15 선언 당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조건식 전 통일부차관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합의내용을 설명하면서, “내가 오랫동안 구상해 온 3단계 통일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1단계 남북연합, 2단계 연방, 3단계가 통일인데 1단계는 현재대로 가는 것이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조건식 전 차관은 “이는 김 대통령이 북한과 통일방안을 협의할 때 한국의 통일방안이 아니라 자신의 3단계 통일론에 의거했다는 의미”라고 진단하면서, 현재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에 정상회담 내용을 기록한 메모가 보관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역대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나 대북 제의에 ‘연합단계’라는 표현은 있어도 ‘연합제’라는 표현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개인적인 통일방안인 공화국연합제에 ‘연합제’라는 표현이 있을 뿐이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중요한 남북간 합의문서에서 ‘연합단계’와 ‘연합제’ 사이에 큰 차이가 있고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특히 공화국연합제의 ‘연합’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연합’과 달리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 개정과 국가보안법 손질을 포함하는 급진적인 것으로서,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시도했다는 점도 6·15 공동선언이 공화국연합제에 기초한 합의였다는 의혹을 갖게 한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제1차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통일방안인 공화국연합제를 갖고 북한과 협상했다면, 6·15 공동선언의 법적 타당성은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절차상의 정당성을 결여한 만큼, 6·15 공동선언을 토대로 한 이후의 모든 합의도 그 정당성을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문점들이 명확하게 해소되는 것만이 대북정책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지름길이다.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남남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이제는 당시 정상회담장에 배석했던 분들이 직접 나서서 6·15 공동선언을 둘러싼 제반 의혹을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문제에 대한 국회차원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 10·4 정상선언의 문제점
임기 말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치러진 제2차 정상회담은 개최 자체에 대해서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가 없었던 회의임이 분명하다. 참여정부는 정상회담 준비과정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는데, 이는 대북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하고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진 ‘남북관계발전법률’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이 법률에서 국가안보적으로 민감한 사항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정상회담의 파장이 미칠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야당의 핵심 지도부에라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면 법률의 정신에 부합하고 국민화합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보다 못사는 북한과 굳이 상호주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만큼 지원을 했으면 북한도 우리에 대한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성의를 보이도록 요구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합당한 정책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7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북한의 핵위협과 미사일 위협이며, 재래식 군사위협 역시 한 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북한의 대남위협 수위는 1990년대 초의 “서울 불바다”에서 이제는 “남한 잿더미”로 한층 강화되었다.
설혹 현 정부가 10·4 선언의 모든 합의를 그대로 이행하려고 해도 정부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참여정부의 가장 중요한 통일정책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남북관계발전법률 제21조 3항에 따라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대북 사업의 경우에는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추산에 따르면, 모든 사업을 시행하는데 만도 14조 3천억 정도가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 헌법 제60조 1항도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권을 인정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에 대한 무단 장기구금 사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남북경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설혹 북한 땅에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핵과 미사일 개발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유엔제재를 받는 북한산 물품을 살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에 10·4 선언의 이행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개성공단의 경우 남북경협의 장점만 선전하면서 단점을 은폐하던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개혁·개방 없는 북한과의 경협이 마치 모래성처럼 외양은 번듯해 보이지만 그 기반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 것인가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개성공단의 허와 실, 남북경협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우리는 남북경협의 목표가 단순한 이윤추구가 아니라 공정한 시장거래 질서를 가르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 남북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상거래 관행이 제도화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남북협력을 이루고 북한의 변화와 개방도 가능할 것이다.
IV. 정책적 추진방안: 제18대 국회의 책무
궁극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 여부는 북한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김정일 정권이 핵에 대한 집착을 거두지 않는 한 우리는 상당기간 북한 핵과 공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정권의 핵포기 의지가 없는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 북핵문제는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전반적인 국정운영과 정책추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제18대 국회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행정부의 북핵문제 해결 노력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북핵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 조성
우리 국민 모두가 ‘북한의 핵보유’라는 사태가 갖는 역사적 중요성과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도록 국회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전쟁의 쓰라린 경험과 군사적 대치라는 냉엄한 현실을 감안할 때, 북한에게 핵보유를 허용했다는 것은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국가적인 수치이며, 지난 10년의 전임 정부가 물려준 잘못된 유산이자 역사적인 과오라는 점에 대한 국민적 각성과 계몽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이 외형상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협을 막지 못했다는 역사적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국민 개개인이 국가안보 의식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이 증폭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대한 국력의 결집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18대 국회는 북핵문제에 대한 국회차원의 합일된 입장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를 조성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북한 핵위협의 실체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전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가 조성되어야 만 정부가 흔들림 없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북핵문제의 효과적이고 신속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북핵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대국민 교육과 홍보를 확대·강화해야 한다. 각 급 학교의 학생교육, 정부출연 교육기관의 대국민 홍보와 통일교육, 군 장병의 정신교육 등 우리 사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의 현황을 파악하고, 북핵문제의 실상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관리·감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국가안보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 18대 국회의 중요한 책무이다.
2. 초당적“북핵문제특별위원회”구성·운영
지난 10년간의 북핵정책에서 귀중한 시사점과 교훈을 얻어야 한다. 왜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했는가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고 시사점을 도출해서, 더 이상의 정책 실패를 막고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 정책에 대한 공과를 분명히 해서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혼란을 해소하고, 지난 10년간 흐트러진 국가안보의 옷매무새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제18대 국회에 부여된 역사적인 소명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 의회에서 1999년에 했던 것과 유사하게, 국회에서 초당적으로 여·야 국회의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회차원의 “북핵문제특별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지난 10년간의 북핵정책 추진과정을 정밀하게 검토하는 한편 교훈과 시사점을 도출해서, 새 정부의 북핵정책 수립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회자문위원단을 만들었던 2003년 4월보다 상황이 엄중해졌음을 감안해서, 북핵문제특별위원회의 규모와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핵문제특별위원회의 중요한 임무는 지난 10년간 진행되어 온 북핵문제의 실상과 정부 유관부처의 대응 태도를 조사?연구해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북한 핵문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지난 10년간 북핵정책의 핵심에 있었던 고위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백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관련 부처들이 지난 10년간의 정책을 스스로 점검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북한 핵문제 백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북핵정책과 대북정책에 대해서 제기되어 온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① 북한의 핵개발 실태를 플루토늄,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제조의 각 분야별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는가?
② 북한정권의 대남전략, 핵전략 등에 대해서 정확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했는가?
③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의 실체는 무엇이며, 노무현 정부의 대북 및 북핵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④ 북핵문제에 관련된 유관부처의 전문적인 견해가 정부의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었는가?
⑤ 남북대화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북핵위협의 실체를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안이하게 대처하지는 않았는가?
⑥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각종 남북대화를 진행하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가?
⑦ 2002년 10월 HEU 사건,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2005년 2월 북한 외무성의 핵보유 선언, 2006년 10월 북핵실험 등 주요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협상 태도는 적절했는가?
⑧ 지난 10년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체제는 적절하게 가동되었는가?
⑨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전시작전권 전환 등 한미동맹 체제를 무리하게 변화시키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
⑩ 6·15 공동선언의 토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인가 아니면 ‘공화국연합제’인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내용을 기록한 메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3. 북핵문제 장기화에 대비한 준비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북핵문제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국회차원의 입장을 정립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북한의 핵전략(핵무기를 자산으로 남북 및 대미 관계에서 결정적인 대남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지난 20여 년간 일관되게 추진되어왔음을 감안할 때, 신속한 북핵폐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북한을 관리하면서 점진적으로 핵폐기를 유도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국가전략은 불가피하게 남북통일 과정과 긴밀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핵을 보유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중장기적으로 ‘당근과 채찍’을 배합하는 복합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앞으로 있을 북핵 관련 협상에서, 행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혹은 편의주의적 발상이나 낙관론에 빠져서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과도하게 양보하고 협상을 서두르거나 애매한 합의를 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를 감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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