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갈등 무엇으로 풀 것인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원 신 보 영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파업이 40일을 넘고 있다.
노사양측의 극한대결과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입장차이는 이미 쌍용자동차의 회생가치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수준이다.
쌍용자동차 문제는 노측과 사측 모두 “생존”이라는 가치를 걸고 있기에 더욱 해결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감당할 수 없다. 동시에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의 경쟁력을 회복함으로써 다수의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사측의 논리도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이 접점 없는 반목과 대립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과연 우리는 어떤 가치에 더 많은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까?
한국의 노동문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치권의 여야간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계와는 아예 합의의 실마리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노동 유연성 재고와 동시에 노동의 고용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했던 제도적 장치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상황의 변화로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특히 비정규직의 해고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노동계의 반발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골은 한층 깊어만 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점에서 풀어야 할 것인가?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등은 사실 한국의 노동현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일종의 계발적 현상에 불과하다.
노동과 관련해서 한국의 역사적 전환점이 된 사태는 외환위기였다.
경제적 성장과 급속한 발전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비록 열악한 노동환경에 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왔음에도 고용불안이라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별반 인식되지 못했었다.
즉 일자리가 풍부했다는 말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개인적인 근면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사회적인 완전고용상태는 상당기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바로 이와 같은 당연한 현실이 변화된 시점이 외환위기이다.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은 국가의 구조와 경제의 체질을 모두 바꾸는 개혁을 추진했다.
그것은 내적인 요구뿐만 아니라 IMF라는 국제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히 IMF는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했고,또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면서 경제체제의 전환을 독촉했다.
당시 개혁프로그램의 요체는 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동안 발전국가로써 향유해 왔던 대부분의 국가주도의 경제정책 또는 시장에 대한 개입이 부정되고, 시장친화적이고 시장중심적인 방향으로 대부분의 제도가 변화했다.
노동 역시 이와 같은 개혁과 체질개선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 결과 노동유연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완전고용과 평생고용 그리고 국가에 의한 복지보다는 개인의 노동임금에 의한 경제생활의 유지라는 원칙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그리고 대체근로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제도들이 노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새롭지만 중심적인 용어로 자리매김 했던 것이다.
다양한 해외의 사례들은 노동 유연화를 당연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뒷받침해 주었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국가들의 경제적 체질개선이 이와 같은 노동유연성의 확보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논의가 한국의 지적영역과 정책개발 및 결정 과정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노동유연성을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경제적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노동계 역시 노사정합의를 통해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노동유연성이 경제발전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의 환경과 제반 조건에 관해서는 정책적인 고려가 빈약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노동유연성이 사회적 고용불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반 조건이 우선 마련되어야 했다.
첫째, 다양한 일자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즉, 대체근로이건 비정규직이건 원할 때 그리고 필요할 때 자신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언제든지 새로운 영역과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동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노동자가 종사하던 일자리에서 다른 영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취업 및 재취업 의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안정적인 소득 또한 제공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사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단지 사측의 경영이익을 위해서 노동유연성을 강조한다거나, 반대로 노동유연성의 대가로 노측에 과도한 사회적 지출을 제공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기초적인 제반 요건과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그때그때 땜질 식으로 정책을 이끌어온 결과이다.
노측과 사측 모두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그 갈등의 원천은 상호불신과 집단행동적 양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 또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와 정치적 이득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게만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파행적인 운영과 5인위원회의 협상결렬 등은 정치권 일반의 책임이다.
동시에 타협의 자세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 노동계도 그와 같은 입장으로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노조의 파업 협상에 대통령이 직접 중재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것은 파당적 이해관계, 노사간의 갈등관계가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과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결과이다.
이제 한국의 노동문제는 이해당사자간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노동의 근원적 가치와 효용 그리고 경제 살리기라는 목표 모두에 부흥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더 이상의 갈등은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만들고 계층간 그리고 정파간 골을 깊게 할 것이다.
노사정 삼자간의 갈등을 풀어내고 조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정책적 비전의 제시와 상호간의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치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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