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한국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인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원 신 보 영
집을 떠나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다.
유난히도 외국 체류 중에는 대한민국인 임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거리를 오가며, 호텔들의 정문에 걸려있는 태극기만 보더라도 나의 뿌리, 나의 고국, 나의 부모형제들을 생각하게 되고, 혹 잘 보이지 않는 귀퉁이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주요 도시들의 시내요지에서 접하는 한국 브랜드의 대형광고들은 여행자들에게 활력소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은 물론이요 나라 사랑의 애틋함을 한껏 부풀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 언론들을 통해 보도되는 국내의 소식들은 부풀대로 부풀은 기분을 180도 바꾸어 놓고 만다.
온통 사회문제로 가득한 혼란스러운 나라로 묘사 되기 때문이다.
보도되는 내용만큼이나 우리는 총체적인 국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근대사를 돌아보자! 일제 강점기의 핍박과 서러움들은 뼈 속 깊은 곳에 큰 교훈으로 남아있고 바로 이어진 동족 상잔의 비극을 통해서는 초토화된 폐허 속에서 굳건하게 재건하는 한국인 특유의 한 과 저력을 볼 수 있었다.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서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지들의 수많은 희생을 감수 하면서도 세계 160여 개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선진 개발국으로서의 도약을 보여 주었다.
이제서야 간신히 얻은 소중한 것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다.
OECD가입국, 선진국 문턱, 자랑스런 대한민국, 코리아.
그간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을 여러 수식어로 떠올리곤 했다.
예를 들면, "떠오르는 동양의 샛별", "동아시아의 호랑이" 등 이 바로 그것이다.
빠른 속도로 추격해 오는 우리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표 하는가 하면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서의 경계심 또한 적지 않았으리라 본다.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 주는 모습은 이 곳 미국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시카고나 뉴욕 등의 대도시에서 우리 한국인들을 제2의 유태인으로 평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는 유태인들의 근면함과 성실함 그리고 더 나아가 악착 같은 근성과 끈끈한 뿌리 의식이 우리 한국인들에게서도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비춰지는 모습들이 과거 유태인들의 초기정착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로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이와 같이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아니, 흔들리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남북 분단의 못 사는 조그만 나라 코리아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똑똑한 국민들의 나라 코리아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위험으로 가득하고 온갖 혼란과 소동 그리고 불신과 반목으로 보기 싫은 흉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국민 모두가 희생과 고통을 감수 하면서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추구 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잘 사는 나라, 선진조국을 건설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과연 우리의 한계는 여기까지 밖에 안 되나?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흔들리는 조국의 모습이 외국 언론들의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될 때 마다, 그리고 주변 외국인들의 걱정 어린 관심표시를 접하게 될 때 마다, 애써 아닌 척 무시는 하면서도 내심 걱정 되는 마음은 피할 길이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폭탄 위협은 남한의 번영과 찬란함을 내세워 우리의 국민성과 관계없는 북한 단독의 문제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국정 파행과 사회 혼란 등의 국내 모습은 국가발전 에너지를 큰 폭으로 저하시키는 그야말로 낭비요 피해라 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마땅한 변명 거리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문제의 핵심에서 관계하는 이들의 주장에는 모두 일리가 있다.
필자 역시 집권여당의 입장과 이에 맞서는 주요 단체들의 입장 모두를 전면 반박하는 것은 아니다.
원만한 해결점에 이르기 위해 겪는 진통을 어찌 낭비라고만 일축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생산을 위한 산고를 어찌 우리 나라에서만 보는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곳 미국의 예만 살펴보더라도 여 야의 당쟁과 대립은 물론이요 주요 단체들의 암묵적인 로비활동과 치졸한 이권 다툼은 흔하디 흔한 일들이다.
단지 그들이 결론 도달을 위해 벌이는 노력들이 성숙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언론의 몫이 크다 할 수 있다.
비판하고 불신하고 평가절하 하기 보다는 믿어주고 밀어주고 기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언론 활동에도 깊숙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문구의 선택이나 표현 방법들이 시청률을 높이고 구독률을 높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론 본래의 역할로 보기에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사실 그간 우리 언론들이 그 역할에 충실했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다는 것이 일개 소인에 불과한 나에게 매우 적절치 못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이 다소 과장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제기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풀어갈 수 있는 일조차 위기를 조장하고 분위기를 고조 시키는데 언론의 책임이 전혀 없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사건의 보도가 진실 보다 자극적으로 포장 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고 여 야가 바뀌는 모습을 두 차례나 경험 하였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항상 투쟁의 상대이고 무소불위 권력의 온상으로 비춰지며 반대로 야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던 세력은 항상 피해자이며 서민의 대변자로 비취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대통령의 권력은 지난 정권에서도, 그리고 또 현정권에서도 항상 국민을 탄압하고 나라를 혼란으로 이끄는 무능력한 집단으로 모양이 정리 되고 있다.
과연 이게 맞는 이치인지? 생각을 아니해 볼 수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더욱 칭찬 하는 사회 분위기 일 것이다.
수년 전, 온통 고통스럽고 불쾌한 사건 사고들로 지면과 영상들이 가득 메워질 때 모 방송사의 한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한 밤중, 아무도 보지 않는 한적한 교차로에서 정지선을 정확하게 지켜서던 한 모범 시민의 모습, 그 모습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감동 시켰었나 말이다.
우리가 아는 우리는 요즘 외국 언론에 비춰지고 있는 걱정스러운 모습의 그런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우리 스스로가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특성상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기사들에 의해 혹 우리 자신을 잘 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국내 언론은 지금의 이런 분위기에 다소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극복해온 세계 최고의 국가이다.
언론에 비춰진 무능력하고 무절제하고 이기적인 모습의 대한민국이 당장의 우리를 실망 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는 최고의 결론에 가장 민주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모두의 노력의 단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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