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그리고 미디어법

고하승 / / 기사승인 : 2009-07-12 12: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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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지쳐있는 요즘, 정치권에서는 뜬금없이 개헌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10일 취임 1주년을 맞아 한 방송에 출연, “권력 분점이 확실히 되고 역할과 책임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는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며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해야 한다”고 개헌 방향과 일정까지 제시했다.

그는 또 “제헌절에 개헌 논의를 위한 공식 기구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의장은 이날 국회의원 전원에게 서한을 발송, "87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 위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럼, 김 의장이 생각하는 개헌의 방향은 무엇일까?

비록 그 자신의 입으로 ‘이원집정부제’라고 못을 박지는 않았다.

그러나 ‘권력 분점이 확실히 되는 헌법’이라고 말한 것에 비춰볼 때,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 의장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앞서 지난 10일 국회에서 '대통령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개헌 토론회가 열렸는데, 상당수의 여야 참석자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지하고 있었다.

실제 민주당 박상천 의원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권력’을 꼽으며, ‘분권형 대통령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대통령 권한을 외교, 통일 안보 분야로 축소화하고 국회가 내각을 책임 질 수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우리나라 현실에 맞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도 “통일 이후 닥쳐올 정치사회적 혼란을 감안하면 의원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에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절충형 정부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며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한나라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개헌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실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달 5일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 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 복당 모임인 '여의포럼' 축사를 통해 "왜 한국정치가 이렇게 말하자면 전쟁터같이 되었는지, 국회가 마치 전쟁터로 되었는지, 그 원인은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식의 이원정부제, 외치(外治)는 국민이 뽑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의회에서 뽑힌 총리가 맡는 것이 가장 이상적 형태라고 본다"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했다.

이날은 박근혜 전대표도 참석했었다. 결국 안상수 원내대표는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찬성하는 박 전 대표 면전에서 “그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안상수 원내대표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친이 세력 대부분이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 홍준표 전 원내대표도 '이원집정부제 개헌 띄우기'에 가세하고 나섰다.

홍 의원은 지난 달 울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세종로포럼 초청 강연에서 현 대통령제를 '황제적 대통령제'로 규정한 뒤,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서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 대북 문제만 다루고 내치(內治)는 총선을 통한 제1당이나 과반수 정당이 맡아야 한다"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했다.

결국 한나라당 친이 세력과 민주당 자유선진당까지 모두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찬성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친박 세력만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없는 민주당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은 십분 이해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있는 한나라당에서 굳이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친이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전권을 갖는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가 ‘얼굴마담 대통령’이 되는 것마저 꺼리고 있는지 모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이 대통령과 청와대 밀담을 가진 이후, 선진당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아 ‘얼굴마담 대통령’마저 박 전 대표의 몫이 아니라, 이회창 총재에게 넘겨주려고 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죽이기’에 불과한 이 같은 정치권의 음모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달 실시한 한국일보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나타났다.

최근의 개헌론과 관련, '가장 바람직한 권력구조'에 대해 질문한 결과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꼽은 응답이 40.9%로 가장 많았다는 것.

반면 한나라당 친이, 민주당, 선진당이 꿈꾸는 이원집정부제는 4.1%에 불과했다.

따라서 민의를 거스르고 정치권 마음대로 개헌을 요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미디어법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달려 있다.

미디어법은 현재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만일 이 같은 민의를 무시하고 미디어법을 한나라당 친이 세력의 입맛에 따라 강행 처리된다면, 개헌 역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친박 측은 미디어법 처리를 방치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조짐이 좋지 않다. 김무성 의원 등 일부 친박 의원들이 앞장서서 미디어법 처리를 강조하고 있으니,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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