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 스퀘어!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원 신 보 영
뉴욕을 다녀왔다.
수년 전 업무 차 들른 후 이번이 두 번째다.
기억에 가물거리는 거리들을 지나 맨해튼의 중심부에 들어서니 눈에 익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우리나라의 대표기업 삼성의 대형 광고판이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을 끈다.
아니, 내가 먼저 삼성의 광고판이 진짜 그곳에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같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아! 삼성이 자랑스럽다"라는 한국말이 들려온다.
돌아다보니 한국인 꼬마가 같은 광고판을 바라보며 부모에게 건네고 있었던 말이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족이 함께 여행을 온 모양이다.
광장 한복판에서 망중한에 빠져있던 내게 꼬마의 한마디는 당연하면서도 작은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단지 우리나라 기업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는 솔직함이 왠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내심 외국을 여행할 때 마다 국내기업의 광고판을 보게 될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서고 나면 자랑스럽다는 표현까지는 쉽게 꺼내지 못했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의 복잡한 정세와 한참 진행되고 있던 법정 문제들 그리고 단체들 간의 서로 다른 입장들이 아마도 장애였지 않나 싶다.
이날 타임스 스퀘어에서 내가 받은 영감은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계의 중심 뉴욕, 그리고 뉴욕의 중심인 맨해튼, 그리고 맨해튼의 타임스 스퀘어에서 마주치게 된 문화의 다양성과 이를 한껏 즐기는 군중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대한민국의 현실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의 단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전체를 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주어진 현실을 통해 비추어진 객관적인 모습의 비교가 그리 큰 무리가 되지는 않을 듯싶었다.
그 중, 우리의 대표적인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시청 앞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교대상이었다.
매번 시끄러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경찰의 방어막이 설치되고 또 광장 봉쇄를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는 곳. "광장의 주인은 시민이요, 시민에게 광장을 돌려 달라" 등의 문구가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설전이 벌어지는 곳 말이다.
과연 서울광장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다.
예컨대, 타임스 스퀘어의 주인은 바로 이곳의 분위기를 한없이 만끽하고 있는 이들의 것이다.
복잡한 도심 한 가운데 마련된 광장에는 곳곳의 차량통행을 차단하고 간이형 의자를 준비해 놓았다.
시에서 준비한 이 의자들의 주인은 따로 정해 져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지나치는 행인들 모두의 것이다.
누구라도 지친 심신을 의지하고 주변의 화려한 광고판들을 감상하며 뉴욕의 밤을 즐길 수 있다. 오고 가는 행인들의 모습 자체가 즐거운 볼거리요, 군데군데서 벌어지는 길거리 퍼포먼스는 그나마 남아 있는 지루함을 달래준다.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를 능가하는 화려함 그리고 주변의 풍부한 문화예술 공간 등 모두가 세계인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게 하는 이유들이다.
경찰병력을 동원해 광장을 봉쇄하고 출입을 통제한다던지, 돌을 던지고 장대를 휘두르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은 이곳의 모습에서 상상해보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서울시가 시청 앞 광장을 정비하여 시민들의 휴식처를 만들겠다는 발표가 있을 때만해도 시민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세계 주요 국제도시의 위상에 걸맞은 훌륭한 문화 휴식 공간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광장은 정치 활동의 무대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시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처음 한동안 잘 되는 것 같더니만 금세 정치 활극의 무대로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시민들은 광장을 또 빼앗기게 된 것이다.
정치 활동은 정치 무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왜 시민들의 문화휴식 공간을 해치고 있는가 말이다.
광장의 봉쇄 철회를 외치고, 시민에게 돌려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역시 그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
진정 시민들을 위한 시민공간으로서의 광장을 돌려 달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 필요로 하는 시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인지? 그 진실을 알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시위대가 그 장소를 활용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인근의 직장인들은 물론이요 덕수궁과 주변 쇼핑시설들을 이용 하는 관광객 등 많은 이들이 쉽게 접근 하고 즐길 수 있는 훌륭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시위문화에 죄 없는 시민들이 골탕을 먹고 있는 격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민주화가 한참 진행일 때는 군사정권의 통제된 언론 하에서는 감춰진 인권탄압을 널리 알리기 위해 거리로 뛰어 나왔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때는 죄 없는 소수의 희생을 감수 하더라도 꼭 이루어야만 했던 과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특정 소수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예가 많아졌다.
이제 우리는 특정한 단체라든지 아니면 구체적인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행동하는 이들보다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한 개인, 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나라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고 정치이상을 펼치려 할 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이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발언의 자유와 정치 활동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 되어있지만, 이를 위해 타인이 보장 받은 권리들을 위협한다는 것 자체는 과거 민주화의 대상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선거라는 정치활동을 통해서 충분한 의사 표시 권리 행사를 해야 한다.
때만 되면 불어오는 바람에 제발 흔들리지 말고 평소의 믿음에 맞는 정치인을 대리인으로 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꼭 해야 한다면 국회와 같은 정치 무대의 주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이도 지나는 사람들이나 상주하는 이들에게 절대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툭하면 봉쇄되는 서울광장, 이제는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이다.
시민들 모두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민본위의 문화 예술 휴식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행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위를 하고자 하는 단체들 역시 본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다수의 이익을 위해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서울광장의 진짜 주인은 조용히 광장을 찾는 이들이다. 그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바라는 이들, 바로 이들이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침묵의 다수이며 정치인들이 받들어야 할 민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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