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당의 준비소홀로 이날 위원장 선거를 일정대로 치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대한민국의 중심부인 서울에서 공당(公黨)이, 그것도 거대 여당이 준비소홀로 인해 예정된 일정에 시당위원장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면, 얼마나 한심한 정당인가.
그런데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한심하다.
그동안 서울시당의 분위기는 ‘권영세 추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당에서 친이-친박 계파 갈등이 심각한데, 서울시당마저 그렇게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원내외 당협위원장들 사이에 폭넓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상당수의 원내외 당협위원장은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마지막까지 중립을 지킨 권영세 의원을 ‘특정 계파에 치우침 없이 공정한 공천을 행사할 수 있는 시당위원장 적임자’로 지목, 그에게 위원장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친이 홍준표 의원과 친박 진영 의원도 출마의 뜻을 접었고, 결국 ‘권영세 추대’는 기정사실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시당은 굳이 위원장선거를 위한 준비를 별도로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준비소홀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선거를 불과 6일 앞둔 지난 17일 전여옥 의원이 느닷없이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누구든 출마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출마자가 특정인의 배후 조종을 받는 자라면 이건 생각해볼 문제다.
각종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 의원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독자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이재오계와 정몽준계의 지원을 약속받고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 같다.
오죽하면 권영세 의원이 22일 평화방송에 출연, "아직도 일부 세력이 당을 장악해 사당화하고 전횡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겠는가.
각설하고, 만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박근혜 등 뒤에 비수를 꽂은 배신자’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전여옥 의원이 한나라당 시당 위원장으로 선출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를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여론조사가 지금 박 전 대표 지지팬클럽인 <박사모>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 참패’를 예견하는 무서운 결과가 나왔다.
전여옥 의원이 서울시당 위원장이 되어 지방선거 후보를 공천하면,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느냐는 물음에 이날 오후 3시 20분 현재 308명이 참여, ‘보나마나 측근공천 할 것’이라며 반대한 응답자가 무려 95% (295명)에 달했다.
반면 ‘누가 공천하든 한나라당 후보이기 때문에 지지하겠다’며 지지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4% (13명)에 불과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나라당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은 ‘전여옥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7월 정례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 조사 대비 1.4%포인트 상승한 40%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결과적으로 전여옥 의원을 시당 위원장으로 선출하는 것은 곧, 박 전 대표 지지자들 40%의 표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실 특정 정당의 특정한 자리에 누가 차지하든 필자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들 가운데는 자신이 노력하고 피땀 흘린 대가로 유권자의 사랑을 받는 한나라당 소속 인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박 전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에게 공천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신들의 사당화 야욕을 포기하는 게 당인의 도리가 아닐까?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 출마예상자들은 자신의 표를 갉아 먹을 게 불 보듯 빤한 사람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럼 대체 누가 그를 지지하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사실상 사망선고라고 하는 수치까지 내려간 지금, 그렇지 않아도 한나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의 표심마저 한나라당 후보에게서 떠나간다면, 그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아무튼 이번 시당위원장 선거 결과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년 선거 때 부메랑이 되어 틀림없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이미 그 답은 나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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