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 `광복의 빛, 더 큰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경축사를 통해 "현행 선거제도로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의정활동도 국정보다는 지역에 우선하게 된다"면서 "국회의원이 지역에 매몰되지 않고 의정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너무 잦은 선거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며 "선거횟수를 줄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이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환영하는 바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혹시 그 이면에 어떤 ‘꼼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왜일까?
우선 1개 선거구에서 1명만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로는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 또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배출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한 선거구에서 2∼5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거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당의 특정지역 편중 현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같은 선거구제 개편이 결국 집권당으로 하여금 영원한 ‘원내 1당’이 되기 위한 술책은 아닌지 의구심을 저버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중대선거구제는 결과적으로 집권당에게 유리한 선거구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각제나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격하시키는 이원집정부 형태로 개헌이 이뤄지면, 한나라당은 영구집권이 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또 이 대통령의 언급처럼 대선과 총선 등 주요 선거의 횟수를 조정해 선거 횟수를 줄이는 방안도 환영이다.
그러자면 마땅히 ‘4년 중임제’로 전환돼야 할 텐데, 한나라당의 입장은 여전히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이다.
그래서 어쩌면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즉 차기 대통령부터는 ‘4년 중임제’를 적용하기는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로서 별로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만들자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이 될 수는 없지만,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 될 경우, 실권을 가진 총리로 영구집권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실권 총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자신의 최측근을 총리로 내세울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의 파트너, 즉 외교와 국방의 권한만 갖게 되는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지목하거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지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같은 의구심을 떨쳐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없다는 선언과 함께,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면 된다.
아울러 당권과 대권의 분리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당무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선언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과연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한나라당은 당헌당규 개정특위를 구성, 오히려 당청소통강화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 직할체제로 당을 바꾸려 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그 이전 단계로 정무장관 신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당내에 팽배해 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당을 꾸려나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당을 장악하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시 원내 다수당 당수가 실권총리가 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차기 실권총리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그의 뜻대로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질 경우,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지 않는가.
그러나 이같은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가동되고 있더라도,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지금 국민이 바라는 개헌 방향은 오로지 ‘4년 중임제’다.
이런 상황에서 설사 여야 정치권의 야합에 의해 분권형 대통령제가 추진되더라도 ‘국민’이라는 벽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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