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정치와 연관된 사안마다 항상 떠올리게 되는 대상이 바로 그분들이다.
정치거목이 품어내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직접 정치 현장에 참여하지 않을 때조차 마치 내가 현장을 주도하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근원에 늘 그분들이 존재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DJ 재임기가 가장 행복했었다”
입원 중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의외 발언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질긴 악연의 고리로 점철됐던 두 분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새삼스럽게 세상이 다 아는 DJ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일’을 들출 의도는 없다.
그러나 드라마틱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역사의 관점’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DJ 입장에서 보면 전 전 대통령의 존재는 천추의 한을 남길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라고 불렸던 1980년 5월.
DJ에게는 오랜 동안 준비해왔던 정치적 꿈을 이룰 수 있는 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는커녕 내란 음모를 꾀한 사형수가 되어 생사조차 가늠할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실로 내몬 당사자가 바로 전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닌 전두환 전 대통령이 DJ의 배려 때문에 가장 행복한 때를 보냈노라고 말했다.
DJ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고 예우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는 사실을 애증의 교착점에 서 있던 당사자의 입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DJ 재임기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고백하도록 하는 힘, 그것이 바로 DJ의 정치 내공이 아닌가 싶어 새삼 놀라게 된다.
역사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DJ의 강력한 정치적 내공을 확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정치는 설명되지 않은 아이러니에 의해 굴러가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전 전 대통령의 고백으로, 오랜만에 성숙한 정치 현장을 보게 된 반가움이 크다.
엄밀히 말하면 DJ의 공이 크다.
용광로처럼 넉넉히 품어내는 대인의 풍모를 가진 DJ이기에 가능해진 상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마’라는 비난이 포화(?)처럼 쏟아지는 DJ 병실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용기를 낸 전 전 대통령에게도 점수를 주고 싶다.
주위의 격렬한 반응에 동요하거나 역정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심정을 내비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게 하기까지 그가 겪었을 내면의 갈등에 인간적 연민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그의 이런 모습이 훗날 역사에 어떤 식으로 그려질까도 궁금하다.
어느 누구의 공과를 따지기보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대적 상황에 놓였던 분들의 이러한 모습들이 소통불화를 겪고 있는 오늘날 정치권에 어떤 식으로든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인동초는 모진 겨울을 견디어 이겨내는 약초의 이름으로 DJ의 별칭이기도 하다.
파란만장한 정치행로를 통해 파생된 舊怨의 상대에게 보였던 관대함만 보더라도 그에게 참으로 걸맞는 별칭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정적을 해치지 않는 관대함에 관련된 DJ 일화는 많다.
신군부에 의해 사형수가 되어 수감되었을 당시 옥중에서 가족에게 남긴 편지(김대중 옥중서신)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도 그가 가족들에게 ‘정적을 향한 용서’의 화두를 던지고 있는 모습은 숭엄하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 사형선고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당시 대통령인 YS에게 사면을 건의하는 등 구명에 앞장섰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위해 애 쓰는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용서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관념을 뛰어 넘어 몸소 실천할 수 있었던 데 DJ의 남다른 면모가 있다.
오늘(15일)은 광복을 맞이한 기쁜 날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변의 구원을 살피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상황을 모색하는 것도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일본에서도 정권교체를 계기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하니 새로운 관계 국면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일본이 가해자로서 과거사에 대해 진정으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시도가 우선되었으면 싶다.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새롭게 대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인동초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님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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