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 헌법연구자문위가 오는 31일 개헌 관련 최종보고서를 낼 예정인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까지 나서서 개헌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다.
필자는 지난 16일자 칼럼을 통해 “어쩌면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 뜻을 무시할 수 없어 차기 대통령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를 적용하기는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로서 별로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만들자는 한나라당 내 친이 측의 의도가 분명하게 엿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이루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선거제도 및 행정구역 개편, 선거회수 축소 등을 제안했다.
한마디로 개헌을 하자는 뜻이다.
그러면 MB가 생각하는 개헌의 방향은 어느 쪽일까?
그의 생각은 사실상 그를 대변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발언을 통해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주최 i-Club 초청토론회에서 “대통령 권한 배분이 수월한 유럽형 이원집정부제를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수차에 걸쳐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주장해 왔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지난 26일 개헌방안과 관련, “국회 양원제로 구성한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날 낮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제와는 달리 당선되는 쪽이 다 갖고 당선되지 못한 쪽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는 외형적 박탈감 때문에 국회 안에서도 투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즉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찬성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민주당의 생각은 어떤가?
민주당의 경우는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반대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친이 세력과 민주당이 서로 의기투합해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개헌 가능성에 대해 “개헌은 국회에서 하는 것이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할 때 개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개헌을 지지하는 여야 의원의 모임이 정원의 3분의 2에 가깝다.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하기로 정식 발동만 된다면 탄력을 받아 추진이 빨리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을 추진할 경우, 과연 ‘국민투표’라는 벽을 넘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민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보다 4년 중임제를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공동으로 지난 25일 전국의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6%가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연임이 가능한 중임제’가 좋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5년 단임 대통령제 유지’ 의견도 38.1%에 달했다.
반면 대통령은 외교·국방을, 총리는 내정을 맡는 이원집정부제식 ‘분권형 대통령제’는 10.1%에 불과했고, 국회 다수당이 국정을 책임지는 ‘의원내각제’는 6.3%로 매우 낮았다.
따라서 정치권이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더라도 국민투표 벽을 뛰어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 쇄신특위 위원장을 지낸 원희룡 의원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은 MB 뜻”이라며, 그 방향에 대해서는 “의회에 권한을 많이 분산시키고 양원제로 견제가 이루어진 4년 중임제”라고 밝혔다.
즉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뜻하는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4년 중임제’를 하기는 하되, 사실상 ‘얼굴마담’에 불과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민들이 MB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한, 그 어떤 ‘꼼수’로도 국민투표 벽을 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