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참석 및 G20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면서 야심차게 이명박 정부의 북핵전략으로 제시한 것이지만,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북이 핵프로그램의 핵심을 포기하는 댓가로 대북 안전보장과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 구상인 그랜드 바겐 방안은 발표 직후부터 미국 정부와의 엇박자와 한미간 불협화음으로 체면을 구기기 시작했다.
미국과 충분히 협의된 것이라는 설명과 달리 발표 직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 담당자인 캠벨 차관보가 ‘처음 듣는 것’이라고 밝히고 국무부 대변인도 ‘그의 정책’이라고 표현하면서 사전에 충분한 의견조율이 결여된 것으로 의심받았다.
더구나 7월부터 오바마 행정부가 거론한 ‘포괄적 패키지 딜’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에도 굳이 명칭을 달리해 발표함으로써 실질 내용보다 북핵협상의 주도권 잡기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랜드 바겐 전략은 한미간 공조여부보다 그것이 구상하고 있는 북핵 접근법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그랜드 바겐이 북핵문제를 일단은 포괄적 협상으로 푸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과거 이명박 정부의 ‘북핵 전제하의 대북지원’ 입장보다 한발 진전된 것임은 분명하다.
이른바 비핵개방3000 구상처럼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대북지원을 본격화한다는 조건부(‘if-then') 접근법에서 벗어나 일괄타결 방식으로 핵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그랜드 바겐은 여전히 위험한 부분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과거 부시 행정부가 고수했던 ‘선핵포기’ 주장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비록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고는 하지만 기존 협상과 달리 북한이 핵폐기와 관련된 핵심내용의 실제 행동을 해야만 타결이 가능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폐기의 본질적 내용을 다루지 않고 동결과 불능화 정도를 타협하고 이후 진전과 결렬 및 파행과 후퇴를 반복해 온 과거 패턴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과대해석될 경우 북한이 핵무기 폐기의 실질적 액션을 보이지 않을 경우 협상타결이 무망하게 될 수 있고 이는 사실상 ‘선핵포기’ 입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된다.
우려하는 것처럼 그랜드 바겐이 선핵포기 입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자칫 단계적 이행접근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자꾸 설명하는 것은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랜드 바겐이 과거 북핵협상 즉 단계적 이행에 대해 대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면 이는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정서가 북핵협상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서 사실상 북의 완전굴복 이전엔 북핵협상이 타결되지 않는 구조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랜드 바겐 전략은 북핵 해결의 최종 단계 즉 북핵프로그램의 완전폐기까지 합의의 이행이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높은 목표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확실히 담보될 때까지는 지금처럼 단계별 이행 수준에서 북에 대해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협상과의 과도한 차별성만을 강조한 채 실질적인 협상의 가능성을 도외시한다면 그랜드 바겐은 말만 협상이지 실제로는 협상이 성사되기 힘들다.
사실 지금까지의 북핵협상은 북한과 미국이 서로 요구하는 사안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괄타결하는 포괄적 협상 방식이었다.
1993-4년의 1차 북핵위기를 진정시킨 제네바 합의에서도 일괄타결 방식은 그대로 관철되었고 2차 북핵위기의 모범답안인 2005년의 9.19 공동성명 역시 오랜 진통 끝에 북미간 포괄적 일괄타결의 산물이었다.
문제는 합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로드맵 작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9.19 공동성명이 포괄적 의제를 합의해놓고도 구체적 이행과정은 별도의 합의를 또 이루어야 했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로서 2.13과 10.3 합의가 그것들이다. 매번 행동 대 행동의 연계된 이행과정을 합의해야 했기 때문에 일방이 합의를 위반하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따라서 그랜드 바겐이 희망하는 것처럼 합의의 최종 목표까지 역진하지 않고 진행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이야기다.
즉 북핵해결의 주요 내용 즉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와 대북 경제지원과 한반도 평화체제 등의 합의가 최종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상호 연계된 과감한 대타결을 이룬다면 제2의 2.13 합의 등의 수고는 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랜드 바겐 전략이 핵폐기 최종 단계까지를 포함해 구체적인 이행내용을 담는 것이라면 이상적이긴 하나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북한과 미국의 상호 불신이 높은 상태에서 서로 합의한 내용을 신뢰성 있게 이행하기 위해선 불가불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계적 실천 방안을 따로 논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동결과 중유제공을 위한 2.13 합의, 불능화와 핵신고를 위한 10.3 합의 등이 별도로 나와야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따라서 2.13 프로세스가 중단과 역진을 했음을 들어 아예 처음부터 북한의 최종 핵폐기를 강제하는 패키지가 철저히 합의되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오히려 완벽한 첫 출구를 고집하다가 북핵문제 해결이 영영 뒤로 미뤄지는 딜레마에 처할 지도 모른다.
북미간 엄존하는 불신구조를 도외시한 채 기존 협상의 한계만을 부각하면서 북핵 폐기의 핵심 이행이 담보되어야만 일괄타결이 가능하다는 지나친 고집에 매몰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은 실제 북핵협상의 현실에서 ‘그랜드 에러’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랜드 바겐이 행여라도 그랜드 에러로 귀결된다면 서둘러 그랜드 바겐세일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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