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전의 UAE 원전공사 낙찰 직후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국내 대다수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MB어천가(御天歌)'를 불러댔다.
실제 이들 언론사들은 국제경쟁입찰에서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UAE 왕세자와의 전화통화를 한 사실 등, 이른바 'MB활약상'이라는 것을 날짜별로 상세히 소개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식이다.
그저 청와대에서 불러주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보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의 일방적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품거나 사실 확인과정을 거친 언론사도 없다. 한마디로 한국 언론들의 ‘바보행진곡’이 합주(合奏)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필자가 앞서 지적했듯이 곳곳에서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우선 최종 사업자 선정을 불과 한 달 정도 남겨놓고 이 대통령이 전화 몇 통으로 협상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청와대의 발표나 각 언론의 보도는 믿기 어렵게 됐다.
오히려 이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의한 ‘원전 덤핑 입찰’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 보자.
조.중.동 등 각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6일 이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첫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시는 ‘프랑스 아레바사의 수주가 유력한 상황’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코미다.
왜냐하면 앞서 지난 해 10월 중순경 미 의회에서 123협정 승인이 이뤄지고 난 뒤이기 때문이다.
123협정은 UAE가 목을 매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초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왕세자가 워싱턴으로 건너가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상·하원 지도자들을 만나 123협정 승인을 위한 로비를 벌일 정도다.
이 협정은 UAE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기업으로부터 원전 원천기술을 수입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보증해주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기업으로부터 원전 원천기술을 수입할 수 있도록’이라는 협정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UAE는 미국기업으로부터 원전원천 기술을 수입하기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고, 결국 지난 10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123 협정에 대해 미의회의 승인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제 범위를 좁혀 ‘미국기업으로부터’라는 조항을 주목해 보자.
이게 결정적이다. 이는 UAE가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기업으로부터 원천기술을 도입하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기업은 미국의 GE-히타치 컨소시엄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 원전수주를 받은 한전컨소시움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아레바 컨소시움은 애초부터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더구나 가격에 있어서도 한전컨소시움의 입찰가는 프랑스에 비해 무려 26%나 낮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르고 실제로 프랑스로 협상분위기가 기운다고 판단해 가뜩이나 저가 입찰을 한 마당에 입찰가를 10%나 더 낮추도록 지시하고, 국방장관을 보내 군사협력까지 약속했다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이런 측면에서 각 언론의 'MB어천가(御天歌)'는 ‘바보 행진곡’이나 다를 바 없다.
지금도 국내 언론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이 숨막히는 원전수주전에 뛰어들어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며 이 대통령을 치켜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보도로 이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무려 50%대에 육박할 만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진실’이 그의 지지도를 끌어 올린다면 마땅히 박수를 치고 환영할 일이지만, 한국 언론의 무비판적인 보도, 즉 ‘거짓’으로 그의 지지도가 올라간다면 이처럼 비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언론은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
이 교과서 같은 소리가 오늘따라 무척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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