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가 연일 세간의 화젯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정몽준 대표가 자신을 비판하며 인용했던 이 고사를 언급하며 강하게 반박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18일 오전 본회의 참석 전 기자들을 만나 “정몽준 대표가 '미생지신'이란 고사에 빗대 한 발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물이 불어나는데도 다리 아래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다 익사한 미생은 진정성이 있는 반면 (오지 않은)애인은 진성성이 없는 것”이라며 “결국 미생이 귀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불과 얼마 전까지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고 공언한 정몽준 대표가 소신을 바꿨다면 판단력에 오류가 있는 것이며,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면 정 대표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몽준 대표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세종시 대안 마련을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운을 뗀 후 "중국에 `미생지신'이라는 말이 있는데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는 고사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 신뢰’를 강조하며, 고집스럽게 세종시 수정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
즉 박근혜 전 대표더러 세종시 원안 고수하다가 물에 빠져 죽지 말고 이제라도 살길을 찾으라는 뜻이다.
그러면 대체 고사에 등장하는 ‘미생’이란 인물은 누구이기에 한 사람은 ‘귀감이 되는 인물’로 평가하고, 또 한 사람은 이처럼 ‘미련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일까?
그래서 고사성어의 유래를 찾아보았다.
이는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과 장자(莊子) 도척편(盜刺篇)에서 유래됐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미생지신’이다.
박 전 대표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려다 끝내 익사한 미생을 ‘귀감이 되는 인물’로 평가한 반면, 정 대표는 하찮은 약속 따위나 지키려다 죽은 그를 ‘미련한 인물’로 깎아 내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고사성어 하나로 두 사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다.
한 사람은 ‘비록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반면, 또 한 사람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다 손해 보는 것처럼 미련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 그들의 삶, 그들의 정치적 행보가 그러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표를 보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첫 만남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거두절미하고 "국민과의 약속만큼은 꼭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경선을 거치며 그 상대자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성정을 꿰뚫어 본 박 전 대표의 최소한의 요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세종시 수정안으로 전 국민을 분열과 혼란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말았다. 만일 국민과의 약속을 조금이라도 무겁게 여긴다면 그런 발상을 할 수가 없는 문제다.
아무튼 박 전 대표가 이처럼 국민과의 약속을 중시한 반면, 정 대표는 어떤가.
그이게 있어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실제 지난 10월 보궐선거 당시 그는 세종시 문제가 불거지자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걸린 현수막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불과 2~3개월 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키면 ‘미련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정치적 약속을 하찮게 여기는 그의 모습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약속을 하루아침에 깨버린 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결국 그의 태도는 노무현 지지 세력을 결집하도록 만들었고, 참여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면 독자 여러분은 ‘미생’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박 전 대표의 생각처럼 약속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귀감이 될 인물’일까?
아니면 정 대표의 말처럼 약속 따위나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어리석은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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