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한나라당에 중립파가 사라졌다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0-02-07 15: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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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그동안 한나라당 내에는 친이-친박 계파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립파’가 비록 미미하나마 일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존재감은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소장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중립을 지키다가 당권 세력 앞에 굴복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당내 주류세력인 친이 당권파는 세종시 문제의 조기 당론 채택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민심의 향배야 어떻든 늦어도 2-3월 안에는 강제당론을 결정한다는 계획아래 이달 중 각종 당내 토론의 장을 마련해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중립파들이 진정으로 당을 위한다면, ‘수정안으로의 당론 변경을 위한 토론불가’라는 강력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

사실 세종시 문제는 현재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지난 4일 조사 결과를 보자.

세종시 수정안과 원안에 찬성하는 비율은 34.7% 대 37.2%로 원안 추진 의견이 수정안 추진 의견을 추월해 버렸다.

이는 지난달 21일과 29일 조사에서 수정안 추진 의견이 9.1% 포인트와 3.5% 포인트 앞선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민심의 흐름이다.

즉 원안 지지자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수정안 추진 의견은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고, 각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수정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가하면, 공무원들과 군인들에게까지 총동원령을 내려 수정안 홍보에 나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정안에 대한 문제가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중립파’는 친이 당권파에 맞서 수정안 포기를 강력 촉구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중립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친이 당권파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실제 중립소장파 의원모임인 `통합과 실용'이 오는 10일 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하는 세종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친이 중심으로 구성된 당 지도부의 강제 당론 채택 움직임에 동조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실망이다.

한나라당 16대 국회 때의 ‘미래연대’나 17대의 ‘수요모임’ 등 과거의 기회주의적 소장파 모임과 전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나라당 소장 중립파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 등 이른바 ‘남원정’으로 불렸던 소장파들의 한심한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남원정 가운데 정병국 의원은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되었고, 남경필 의원도 인재영입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니, 그들의 뒤를 잇는 중립소장파들이야 오죽하겠는가마는 이건 아니다.

그래도 중립지대의 사람들이 친이-친박 양쪽 계파의 사람들을 적절히 견제하고, 올바른 소리를 내야 한나라당에 그나마 희망이 있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이 ‘우르르’ 대세론 후보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나, 현재 당권을 쥐고 있는 지도부의 뜻에 따라 사실상 수정안 쪽에 줄서기 하는 ‘통합과 실용’ 모임이 뭐가 다른가.

이런 한나라당이라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그리고 경고하거니와 당신들은 줄을 잘못 섰다.

물론 최고 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수정안을 염원하고 있고, 당 지도부가 그의 뜻을 받들어 수정안 당론 채택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고 있지만, 국회통과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우선 당장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모든 야당이 반대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내에서도 친박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심이 원안을 지지하고 있지 않는가.

소위 중립파라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민심이 그대들을 떠나면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19대 총선에서 그대들을 살려 줄 수 있는가.

아니다. 그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이 대통령도 아니고, 당 지도부는 더더욱 아니다.

오직 국민만이 그대들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국민들은 지금 당 지도부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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