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친이(親李, 친이명박)계가 경선 승패여부와 관계없이 수도권 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경선에서 패배하면 친이계가 스스로 한나라당에서 떨어져 나가 신당살림을 차릴 것이고, 승리하면 그 여세를 몰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에서의 철수를 선언한 뒤 한나라당을 이명박 대통령 지지기반인 수도권 지역정당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친박계가 반발해 한나라당이 둘로 쪼개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당시 글의 요점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종시 문제로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이런 의구심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실제 세종시로 인한 여당 내 갈등은 여야 갈등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친이계는 오직 수도권 민심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남 민심이 반대하고, 호남과 강원민심은 물론 충청 민심까지 모두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고 있지만, 친이계는 무조건 밀어붙일 태세다.
심지어 국민투표 대상도 아닌 문제를 가지고 국민투표를 하자고 우기는가하면, 자유투표를 해서라도 수정안을 ‘강제당론’으로 채택하려 들고 있다.
우선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 회장을 지낸 심재철 의원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정병국 사무총장이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국민투표.자유투표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인구수가 영남 호남 강원 충청 제주 등 비수도권 인구수보다 훨씬 많다는 데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물론 이들 지역구 출신 의원들도 상당수다. 따라서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나눠 싸움을 할 경우 승산이 있다는 게 친이계의 속셈일 것이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수정안의 핵심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지적처럼 수도권의 것은 못 주겠으니까, 다른 지방의 기업들을 세종시로 주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정안은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해서라면 충청권과 더불어 영호남 등 비수도권 전체를 버려도 괜찮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세종시 문제는 친이계의 ‘수도권 정당 만들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갈등을 유발해 오는 6.2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 중간 심판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자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지금 국민 10명 가운데 적어도 6~7명 정도는 이 대통령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이라는 이름 가지고는 지방선거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특히 이 대통령 취임 이후 그동안 여러 차례 실시된 각종 재보궐선거가 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더구나 전국 동시에 실시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4대강 강행추진 등 이 대통령의 모든 잘못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결국 정권 심판론이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국민들의 시선을 ‘이명박 실정’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교육책으로 만들어낸 게 바로 ‘세종시 수정안’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만들어내다 보니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당연지사.
수도권 과밀화해소 및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궁극적인 입법취지가 퇴색한 법안, 대기업에 각종 특혜를 부여하느라 국민들의 혈세를 더욱 짜 낼 수밖에 없는 반서민 법안이 바로 수정안이다.
이쯤 되면, 이 대통령과 당 주류세력인 친이계 스스로 수정안을 철회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그들은 고집스럽게 이를 강행하려 들고 있다.
영호남과 충청,강원,제주 민심이 모두 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도 수도권 민심이 자신들을 지켜주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차제에 한나라당을 아예 수도권 지역 정당으로 바꿔버리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도권 사람들이 모두 바보만 모인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차량으로 출퇴근 시간대면 주차장으로 변해버리는 도로를 바라보며 누구나 한 번 쯤은 과밀화 문제를 생각해 봤을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매매가를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던 서민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환경 오염문제로 ‘턱턱’ 숨이 막히는 수도권에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좋은 환경을 꿈꾸었을 것이다. 바로 그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종시 원안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결국 친이계의 수도권 정당 만들기라는 원대한(?) 계획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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