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론과 개헌론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민투표론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언론에 흘린 것이고, 개헌론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권익위원장이 같은 날 동시에 제기한 것이다.
따라서 언론과 정치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4대강 사업 문제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이명박 정권의 ‘꼼수’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사실 세종시가 향후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4대강 사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원안+알파’가 현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친이계가 고집하고 있는 수정안 보다 훨씬 더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 효과적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원안+알파’가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설사 수정안을 한다고 해서 나라가 절단 나는 것은 아니다.
반면 한반도대운하의 전단계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4대강 사업은 자칫 잘못하면, 나라가 완전히 절단 날 수도 있다. 한번 망가진 환경은 그것을 복원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자본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지금 청계천을 보면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10년 이상 꾸준히 개선사업을 해온 양재천과 비교할 때, 청계천은 정말 엉터리다. 따라서 6.2 지방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진 청계천을 다시 뜯어내고 양채천처럼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다시 복원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자그마한 청계천이니까 다행이지, 만일 우리나라의 젖줄인 4대강 전체가 그런 모습이라면 어찌될까?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사실이 알려질까 봐 성동격서의 일환으로 세종시 수정안 문제와 개헌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즉 국민들 눈이 일시에 세종시와 개헌 문제에 쏠려 있는 동안 얼렁뚱땅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려는 속셈이라는 말이다.
실제 이명박 정권의 성동격서 꼼수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4대강 사업이 정치권의 별다른 저항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오피니언리더들은 진보-보수 등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뜻있는 분들이 지금 4대강사업 저지를 위해 국민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법원의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에 사업을 끝내기 위해 불철주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정말 큰일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반드시 이를 저지해야 한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4대강 사업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역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밖에 없다.
보수 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실제 그는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에게 4대강 저지 사업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물론 박 전 대표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 가뜩이나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는 마당에 4대강 사업까지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힘에 버거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박 전 대표가 나서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끝까지 침묵을 유지한다면, 훗날 역사는 박근혜 전 대표를 4대강을 망가뜨린 동조자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침묵은 단지 방관하는 게 아니라 암묵적 동의이기 때문이다.
특히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사업이 절대 아니라고 하더니 보를 대운하 수준으로 만들면서 “나의 재임 중에는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을 비트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 아닌가.
그런데도 박 전 대표는 지난날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한 적이 있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한반도대운하를 4대강사업으로 위장했다는 지적에 대해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4대강사업이 아니라 대운하사업이라면)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가(대운하 사업이)아니라고 말했는데 믿어야 할 것”이라고 대못을 박아놓았었다.
이게 대못이 되어 지금도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4대강 문제에 대해 사실상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께 묻고자 한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잘 알다시피 이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충청도민들에게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한다고 수차에 걸쳐 약속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버린 사람이다. 지금도 그 사람이 ‘대운하 아니다’라고 한 말을 국민들은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라면, 지금 이 시점에 분명하게 4대강 사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해야만 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거듭 말하지만 4대강 사업은 국민 여론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사업이다. 이 문제에 대해 끝까지 침묵하는 것은 정치지도자로서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비록 당내 친이계와 전선이 확대되어 버겁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정의라면, 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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