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가 활동을 마감하면서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지난 27일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 친이-친박계 간에 견해차가 있음에도 불구, 특위 전체회의를 통해 황당한 내용의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법안을 통과시켜버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장 황당한 내용은 서울특별시를 비롯해 인천 부산 등 6개 광역도시의 구의회를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는 의회를 둔다는 헌법 제118조 제1항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으로서 당연히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만일 구의회가 폐지된다면 서울의 25개 자치구는 물론 전국 6대 광역시의 자치구 역시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청장도 선출직에서 임명직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구의회 없는 구청장의 독선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법에 불과한 것으로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통합기준, 통합방안 등 본질적인 내용을 국회가 아니라 모두 대통령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 추진위원회에 백지위임한다는 내용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 특별위원회가 2005년에서 2006년, 2008년에서 2010년까지 무려 4년간이나 논의하여도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것을 행정부의 대통령소속기관에게 백지위임해 대통령 마음대로 결정하라고 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이것은 단순한 국회의 직무유기가 아니라, 국회가 이 대통령의 ‘재집권 음모’에 가담하거나 묵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실제 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통해 이 대통령이 재집권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비록 이번 임기를 끝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는 하지만, 차기 총리가 실세가 되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고 그 자리에 이 대통령이 앉는다는 게 ‘MB 재집권 프로젝트’인 것 같다.
그러자면 먼저 행정체제 개편을 통해 중앙집권을 더욱 강화하고, 현재의 기초자치단체들을 통합해 국회의원 선거구를 중선거구제로 변화 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독(毒)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위 친박계 인사라는 허태열 최고위원이 그런 권한을 고스란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넘겨준다니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
모르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는 멍청한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그는 이명박 ‘엑스맨’이 분명할 것이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이 대통령의 재집권 음모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특위 결정은 당연히 재검토 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특히 특위가 대통령소속 추진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을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하는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방법을 선택한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허 위원장이 청와대와의 교감에 의해 이런 황당한 선택을 했다면, 그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 백배사죄함이 옳다.
그런데도 그는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관련, 28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차기 원내대표는 6월초 국회에서 지방행정체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인사가 맞는다면, 설사 한나라당 친이계가 이런 결정을 내리더라도 반대했어야 할 그가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이 대통령의 재집권 음모를 돕고 있으니 어찌된 노릇인가.
지금이라도 허 최고위원은 대안마련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를 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박근혜 전 대표지만, 그의 주변에는 이토록 분별력 있는 인재가 없단 말인가.
이러고도 6월 전당대회 때가 되면, 친박계 몫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경선에 나설 것 아니겠는가. 겉으로는 친박이지만, 이처럼 ‘MB 엑스맨’ 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디 허태열 최고위원 한 사람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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