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원칙 박근혜’와 ‘바보 노무현’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0-05-24 12: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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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요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팬클럽 박사모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팬클럽 노사모 출신들의 ‘투항’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박사모에 가입한 회원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으로 존경했고 지금도 많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며 “그랬던 내가 지금의 모든 진보세력들을 마다하고 박사모 회원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박근혜는) 지금 이 땅의 정치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인 것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유형의 글들은 한 두 개가 아니다.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노사모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박사모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 박사모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명숙 유시민 등 이른바 ‘친노 후보’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보다는 한명숙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경기도에서는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보다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는 글들이 제법 눈에 띈다.

물론 이런 글에 대해 회원들 사이에 찬반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반대보다 는 찬성하는 회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친이 후보보다 차라리 친노 후보가 당선되는 게 백번 낫다는 분위기가 박사모 회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른바 ‘대연정’을 제안한 바 있다.

대연정이 무엇인가. 함께 정부를 꾸려 나가자는 것 아닌가. 사실상 권력을 나눠 갖자는 제안인 셈이다. 당시 필자는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어떤 ‘꼼수’나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 거렸었다. 너무나 파격적인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제안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박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가치와 품성, 자질 등을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기꺼이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실제 1년 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인 서청원 전 대표의 부인이 봉하마을로 문상을 간 일이 있다. 당시 상주로 문상객을 맞이하던 핵심 친노 인사가 그를 알아보고,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에는 진정성이 있었습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우군이었던 진보진영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는 등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런 고초를 감내해도 좋을 만큼, 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박 전 대표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대연정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을 존중하듯이 박 전 대표의 원칙 또한 존중해 주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에 이를 반대하면 당내에서 고립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게 원칙이기 때문에 ‘원안 + 알파’를 주장한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유시민 참여당 경기지사 후보가 “와이프가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갈 곳을 잃은 노사모 회원들에게 박사모나 근혜동산, 근혜사랑, 호박넷과 같은 박근혜 지지팬클럽이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번 6.2지방선거에서 박근혜 지지자들이 친이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친노 후보를 지원하고, 차기 대선에서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빅딜’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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