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현재 한나라당이 처한 상황에 대해 "지난 2004년 탄핵 당시 이상의 위기"라고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을 맞아 지지율이 급락하더니 13.8%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민심이반으로 인해 4.15 총선에서는 의회 과반수를 잃었고, 급기야 열린우리당에 제1당 자리까지 내주고 말았었다.
실제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총 151석을 얻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민주노동당도 10석을 차지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겨우 121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목표는 200석 이상이었다.
만일 그 때 박근혜 전 대표가 ‘천막당사’ 정신으로 당을 이끌지 않았다면, 열린우리당의 목표의석은 무난히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한나라당은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 전 대표는 지금이 바로 그때와 같은 위기상황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더 위급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탄핵 당시에는 ‘위기’가 눈에 보였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권좌에 앉아있는 지금은 아예 그런 위기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을 알면 그나마 대안을 마련해 대처할 수 있지만, 위기가 닥쳐오는 것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의 한나라당이 꼭 그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왜 참패했는가.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잘해서가 결코 아니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 6.2지방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잘해서’ 여당이 패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전체의 3.5%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39.2%)과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20.8%) 때문에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여론조사기관 (주)윈지코리아컨설팅이 지난달 12~13일 양일간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다.
즉 한나라당이 참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과 여당으로서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을 한 `수직적 당청관계' 때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수직적 당청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당청을 분리한 현재의 당헌당규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죽어가는 한나라당을 살릴 수 있는 올바른 처방전이다.
그런데 7.14 전대 유력 당권주자인 안상수 의원과 홍준표 의원은 터무니없는 처방을 내리고 말았다.
안상수 의원은 5일 CBS <이종훈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당청분리가 아니라 당청조화만이 정권재창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홍준표 의원은 전날 광주를 방문해 “당청관계 일체화를 위해 대통령의 당직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당헌당규를 개정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 ‘당청분리’가 아니라 ‘당청일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죽어가는 환자에게 독극물을 처방하는 사이비 의원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 아무나 붙잡고 ‘당청분리 된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이냐, 아니면 당청일치 된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이냐’ 하고 물어보라.
그 답은 너무나 빤하다.
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힘 있는 여당이 나서서 이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운영방식에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명백한 답을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는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두고 보라.
장담하건대, 만일 한나라당이 ‘당청일치’니 ‘당청조화니’ 하는 명분으로 이명박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거나 거수기 노릇을 계속한다면, 한나라당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노무현 탄핵 역풍’에 버금가는 국민의 분노에 직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통곡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아무래도 7.14 전당대회 결과가 한나라당의 흥망을 좌우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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