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안상수 신임 대표가 또 다시 ‘분권형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다.
안상수 대표야 정치인인 만큼 자신이 속한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분권형 개헌 문제를 꺼내들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를 보도하는 보수언론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실제 <연합뉴스>는 지난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를 계기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같은 날 “야당도 분권형 대통령제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개헌논의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 시기를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당 주류와 견해가 다르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또 <동아일보>는 18일 “`제왕적 대통령제'로 대변되는 현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의 폐해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는 정치권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왜곡이다.
우선 <연합뉴스>의 보도는 사실일까?
아니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를 계기’로 한다는 전제가 잘못됐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시절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했다는 사실은 그 어디에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이라 불리는 그의 주변을 샅샅이 털었으나, 끝내 그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히려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모질게 뒷조사를 했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마당이다. 특히 ‘분권형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라는 보도는 터무니없다.
국민들은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같은 대통령제인데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결코 ‘제왕’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등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제왕’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지 않는가.
또 <조선일보>의 ‘야당도 분권형 대통령제에는 동의하고 있다’는 보도 역시 명백한 오류다.
실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최근 개헌 방향에 대해 “민주당 당론은 4년 대통령 중임제”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은 바 있다.
특히 <동아일보>의 “대통령 직선제의 폐해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는 정치권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보도는 정말 황당하다.
필자는 야당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반대한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1987년 이른바 6.10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의 정치적 성취를 야당이 포기한다면, 그것은 국민과 등을 돌리는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직선제가 아닌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아일보의 보도 역시 명백한 사실오류다.
대체 보수언론들은 왜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미디어법’의 특혜를 의식해 안상수 대표의 ‘분권형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 개헌 논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이원집정부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방안이 아니다.
특히 ‘분권’을 위해서라면 이건 정답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3권이 분립돼 있다.
입법부인 국회와 사법부가 집행부를 적절히 견제하기만 하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입법부인 국회, 명백하게 말하자면 국회의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문제다.
즉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권의 나팔수나 거수기를 자임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이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현재 한나라당 당헌당규에 규정된 당청 분리원칙을 철저하게 이행하기만 하면, 굳이 개헌을 할 필요도 없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제 폐해를 명분으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추진하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특히 보수언론의 보도처럼 국민적 공감대는커녕, 여야 정치권의 공감대마저 형성돼 있지 않은 시점이다.
언론은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 언론이 ‘떡고물’에 눈독을 들이는 순간, 이미 그것은 언론이 아니다.
이상돈 교수는 안상수 대표의 ‘분권형 개헌’ 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서 문제라면, 그런 논의는 야당이 시작해야 하는데 여당이 그런 말을 하는 것부터 3척 동자가 웃을 일이다.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된 것이 문제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독선과 아집의 연속임을 한나라당의 친이계가 인정한다는 말인지, 알쏭달쏭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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