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간 개헌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 같다.
정치권은 당초 8.8 내각에 ‘이재오’라는 묵직한(?) 이름이 특임장관 후보자로 올라있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 많고 많은 자리 중에 왜 하필이면 ‘특임장관’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 어떤 특별한 임무를 맡기기 위한 것이라면, 대체 그의 ‘특별 미션’은 무엇일까?
그는 ‘한반도대운하 전도사’라는 별칭을 달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4대강 사업 강행’이라는 임무를 부여하려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이미 한 고비를 넘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 ‘4대강 결사반대’를 외치던 민주당이 11일 대형 보 건설 중단, 대규모 준설 최소화, 지류.소하천 정비강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4대강 사업 대안을 강별로 발표하는 등 반대 수위가 현저하게 낮아졌다.
박지원 비상대책위 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치수.용수 차원의 4대강 살리기에는 찬성하지만 `이명박식 4대강 사업'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굳이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가 나설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그의 특별 미션은 무엇일까?
바로 개헌이다.
실제 이명박 집권 후반기 최대 과제는 '개헌 작업'이 될 것이고, 이재오 후보자에게 있어 특수 임무는 '개헌'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을 한다면 그 시기를 올해까지라고 밝혀왔고, 이 장관 후보자 역시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에 "정권 기본틀과 철학이 갖춰졌으니 이제 해결해야 할 것은 정치개혁"이라면서 "올해 말까진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장관 후보자가 개헌을 위해 전력 질주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김무성 원내대표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개헌(논의) 적기”라면서도,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의 개헌 임무와 관련해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즉 개헌 논의를 하긴 해야 하지만, 이재오 장관후보자가 주도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미 국회 내에서 미래헌법연구회라는 게 만들어졌다”며 미래헌법위원회 주도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면 이재오 후보자가 생각하는 개헌의 방향과 미래헌법연구회의 개헌방향은 서로 다른 것인가?
아니다. 사실은 그게 그거다.
이 장관 후보자는 평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 왔었다.
따라서 그는 분권형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강력하게 밀어 붙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김무성 원내대표가 지목한 미래헌법연구회는 어떤 개헌을 논의해 왔는가.
주요 방향은 역시 이원집정부제다.
실제 국회 개헌모임인 연구단체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그간 186명의 회원들이 주축이 돼 수십여 차례의 월요개헌세미나와 지역순회토론회 및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개헌연구 활동을 벌여왔다.
그들의 활동이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위원회는 지난 해 8월 '개헌 보고서'를 만들어 이원집정부제와 4년 중임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두 가지 개헌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형식상 두 가지안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이원집정부제’에 힘이 실려 있는 보고서였다.
따라서 이재오 특임장관의 개헌 방향이나 김 원내대표가 지목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의 개헌 방향은 모두 ‘이원집정부제’ 개헌으로 귀결된다. 서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 원내대표가 ‘이재오 개헌 주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은 다분히 헤게모니 쟁탈전, 나아가 ‘개헌충성경쟁’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여권 수뇌부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물론 국회의원 재적의 2/3면 개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손쉬운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 의원수가 180석이니까 거기에 18석만 더 보태면 단독으로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
민주당이 반대하더라도 보수대연합을 주장하고 있는 자유선진당과 이인제 의원 등 보수성향의 무소속 의원들만 끌어들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개헌의 마지막 관문인 국민투표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은 ‘4년 중임제’개헌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재오-김무성 ‘개헌 헤게모니 쟁탈전’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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