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8.8 내각을 구성하면서 장관 후보자들의 ‘위법’사실을 알고도 지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검증시스템이 아닌 '인사권자의 인식', 즉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실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7일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및 천안함 유족 동물 비유) 발언 빼고는 언론에 나온 나머지 후보자들 얘기는 검증을 통해 100% 알고 있던 사항"이라고 말했다.
즉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5차례 위장전입과 부인의 양평 부동산 투기 및 위장취업 의혹,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쪽방'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모두 청와대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 김태호 총리,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 등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도덕성 의혹이 뚜껑 열린 판도라의 상자처럼 각종 의혹 덩어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위장전입은 단골메뉴다.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는 ‘위장전입’에 대해 자녀교육용 위장전입은 괜찮고 부동산 투기용 위장전입은 안 된다는 내부규정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임에도 자녀교육용 위장전입은 괜찮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니 얼마나 황당한가.
아무래도 이 대통령이 자녀 교육 목적으로 5차례 위장전입을 한 전력이 있어, 자신과 똑같은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황당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중도 하차는 없다. 끝까지 간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즉 내각 후보자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던 상관없이 이 대통령이 지명한 만큼 그대로 임명하겠다는 뜻이다.
공직생활 하다 보면 한두 건 비리가 없겠느냐는 게 판단의 근거겠지만 역대정권에선 유사 의혹으로 낙마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실제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는 위장전입 하나만으로 낙마한 사례가 있다.
이헌재ㆍ최영도ㆍ강동석 씨 등은 모두 부동산 의혹문제로 물러났으며,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내정자는 부동산 투기의혹에 휘말려 86일간이나 총리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아마 당시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면, 살아남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자 정도가 재산이나 자녀 관련 의혹이 없을 뿐, 흠결 없는 후보가 전무할 정도”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비리 종합백화점” 수준이라는 것.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을까?
우리 국민들이 대통령을 잘못한 선택한 때문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하는데, 위장전입 등 무수히 많은 범죄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따라서 그 주변에 그렇고 그런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번 8.8 내정자들 가운데 가장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정복 내정자는 이명박 주변인사가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계 인사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주변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고를 수가 없었을 것이고, 결국 ‘덜 더러운 사람’을 고르는 황당한 내부규정을 만들게 됐을 것이다.
더욱 한심 것은 여당의 태도다.
상황이 이런 정도라면 마땅히 한나라당이 나서서 각종 의혹이 제기된 내정자들의 지명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형식적으로라도 그런 발언을 하는 한나라당 의원은 단 한명도 없다.
야당이 “지명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내는데도 여당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김무성 원내대표 같은 경우는 야당의원들에게 "비난을 위한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런 비리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데 왜 문제 삼느냐는 식이다.
대통령의 인식이 그렇고, 여당의 원내대표 인식 또한 그와 같다면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 2012년은 왜 이리 더디게 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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