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친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시동?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0-10-03 11: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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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저녁 한나라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만찬에서 이 대통령의 왼편에 박근혜 전 대표가 앉았다.

통상 당 대표가 대통령의 왼편에 앉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날은 안상수 대표가 우측에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왼편에 자리 한 것.

이는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서면서 여권 내 힘의 균형이 친이에서 친박계로 쏠리고 있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실제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 특히 진성호 의원 등 친이계 의원들은 2층 만찬장으로 이동하기 전 1층 환담장에서 박 전 대표에게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의했고, 박 전 대표는 기꺼이 그들의 요청을 받아 주었다.

불과 4개월까지만 해도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친이-친박계가 극한대립 양상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조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변화가 아니다. 이미 박 전 대표 쪽으로의 힘 쏠림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당내 여성의원들하고 만났다.

그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의원들에게 “충청도 분들이 말씀이 좀 느린 줄 아시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춤을 추실까요’를 충청도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까요?”라고 물었다.

여성의원들이 대답 못하고 있으니까 박 전 대표가 “출껴?”라고 말했다.

좀 썰렁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유머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이런 농담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런 유머를 할 정도라면, 그만큼 자신감에 차 있다는 뜻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평소 안하던 농담을 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최근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과 식사 모임을 자주 갖는 것도 자신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친이 핵심세력들 사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친이 핵심세력에게는 ‘박근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심지어 일부 친이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야당이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자신들이 지은 죄, 즉 18대 총선 당시 친박계 공천 대학살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친이계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친이 소장파들은 박 전 대표와 만남을 통해 그가 결코 그런 식의 정치보복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그 뜻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친이 핵심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친이계 중심의 대권주자를 만들어 보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그 누구도 ‘박근혜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친이계도 박근혜 전 대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박근혜 전 대표가 친이계와 화해한다면 친이계가 박근혜 전 대표를 밀어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을 것이란 말이다.

특히 임기 반환점을 돌아선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점차 무력화되는 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안전판은 박근혜’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최근 친이계 대표 격인 이재오 특임 장관이 친박계와 자주 접촉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친이계는 박 전 대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정치신뢰와 신의를 중요한 철학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만일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친이계도 나와 함께 가는 동반자다’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면,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발언을 끝까지 지키려 할 것이다.

따라서 친이계는 공식적으로 그런 발언을 이끌어 내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박 전 대표를 향한 친이계의 구애가 그 처절한 몸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그들의 구애를 받아들이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불가피한 경우, 그들은 ‘박근혜라도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가능성이 엿보이면 당장 ‘친이 후보 만들기’를 시도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박근혜는 대통령', '친이는 총리'라는 미끼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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