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청와대 대포폰’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해명할 때마다 새로운 의혹들이 ‘콸콸콸’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이 지난 7월7일 오전 대포폰을 만들어서 지원관실 장모 전 주무관에게 사용하라고 넘겨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지원관실 장모 전 주무관이 불법사찰 기록이 담긴 하드디스크 4개를 수원에 있는 한 업체로 몰래 반출해 파기한 날이다.
그렇다면, 대포폰이 증거인멸용, 즉 하드디스크를 은밀하게 파기하기 위해 급하게 개설됐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최모 행정관과 그 대포폰을 사용한 장모 전 주무관의 대질신문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증거인멸 이후 최 행정관과 대포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드러난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기획총괄과장에 대해서도 대질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그저 최 행정관을 단 한차례만, 그것도 출장조사 한 것이 전부다.
그리고는 검찰은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에 가담했을 것으로 보고 조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검찰 수사능력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라면, 그런 무능한 검찰에 기소독점권을 부여할 까닭이 없다.
문제는 또 있다.
검찰은 최 행정관이 또 다른 대포폰을 개설해 지원관실 직원들과 통화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최 행정관 명의의 휴대전화 내역도 들춰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고작 한다는 소리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만일 검찰이 영장에 범죄 혐의와 압수 범위를 제대로 적시했다면, 영장이 기각 당했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결국 검찰은 최 행정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만 한 채, 공모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수사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 역시 검찰의 무능함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사실 대포폰 문제는 민간인불법사찰에 대해 청와대 배후설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더구나 앞서 검찰 수사종료 후에 ‘BH 하명’이라는 메모까지 발견된 마당이다.
BH란 Blue House의 약자로 청와대를 지칭하는 단어다. 따라서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에서 벌인 불법사찰 사실을 청와대 등 윗선에 보고하거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특히 이런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은 ‘재수사 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급기야 화가 난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 5당은 지난 8일 민간인 불법사찰과 청와대의 대포폰 지급 등과 관련해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집권 여당 일각에서도 "불법사찰 사건을 털고 가야 정국이 안정된다"며 재수사 요구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대포폰 논란이 제기된 이상 (검찰이) 재수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고 밝혔고, 같은 당 남경필 의원도 "당 지도부 안에서도 다수가 재수사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며 야당의 재수사 요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민여론 역시 민간인 불법사찰에 재수사에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민간인 사찰 재수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재수사 반대’라는 의견은 15.3%에 불과했고, ‘재수사 찬성’이라는 의견이 59.2%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11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로 조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3.7%였다.
국민은 물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모든 야당이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의원들도 상당수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검찰만 ‘재수사는 필요 없다’며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검찰이 청목회 입법로비의혹에 대해서는 유난스럽게 칼을 휘두르고 있다.
참 가관이다.
조카가 이번에 사법고시에 합격, 연수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검사가 아니라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런 검찰의 모습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