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국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몇백년 가는 정당이 될 수도 있고, 국민의 버림을 받고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9일 창당 13주년 기념식에서 남긴 영상 메시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나라당은 10년의 야당 생활을 마치고 국가를 운영하는 여당으로 더 큰 책임감 안고 있다"면서 "이것은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여당으로서 더 잘해서 국민에게 인정받는 정당이 돼야 한다"면서 "자긍심과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을 국민이 행복한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지난 2004년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이 고전할 때 당대표를 맡아 총선을 이끌면서 국민들에게 "한나라당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시면 당이 변하고 달라지겠다"고 호소했던 메시지의 연장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당시의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 즉 당이 변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국민들 앞에 보이면 몇백년을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럼,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어떤가.
약속대로 국민들 앞에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기득권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당내 개혁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민본21’ 소속 의원들을 보면 희망적이다.
이들은 이른바 ‘부자감세 철회’ 등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상수 대표 등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 핵심 세력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절망적이다.
오직 정권 연장을 위해 ‘분권형 개헌’에 드라이브를 거는 등 오직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결국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의 우려처럼 한 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헤럴드공공정책연구원과 ARS 조사업체 ‘데일리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달 9일 19세 이상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해 재신임 여부를 조사(신뢰범위 95%에 오차한계 ±3.1%)한 결과, 물갈이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서울 전체 48개 지역구 가운데 40개를 한나라당이 독식하고 있는 데 국민들은 ‘만약 국회의원 선거가 내일이라면 현 국회의원을 찍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무려 42.4%가 ‘다시 안 찍는다’고 응답한 반면, ‘다시 찍는다’는 응답은 겨우 26.6%에 불과했다. ‘잘 모르겠다’는 부동층은 31%였다. 즉 서울시민 4명 중 1명만 한나라당 의원들을 재신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일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한나라당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 개혁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민본21’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국민의 61.6%가 “정권 바뀌어야 한다”고 응답을 했을 뿐만 아니라, 무려 70.8%가 “보수가 싫다”고 응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70% 이상이 진보성향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외면 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리서치의 11월 정기조사결과 역시 한나라당에게는 암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에게 선호하는 차기정부 성향을 물었더니,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라는 응답이 47.7%로 절반에 육박했다. 반면 ‘보수안정 성향의 정부’라는 응답은 39.5%에 그쳤다. 무응답층은 12.8%였다.
이는 ‘한나라당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박 전 대표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을 예고하는 수치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국민의 뜻을 먼저 헤아리고, 기득권을 고집하기 보다는 과감하게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연 한나라당이 몇 백 년을 가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될지, 아니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정당으로 전락하게 될지, 그 결과는 전적으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선택에 달렸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할지, 아니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매한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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