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특임장관이 9일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연계한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견됐던 것으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필자는 약 1년 4개월 전, 그러니까 지난 해 8월 <4년 중임제 +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국민의 뜻을 무시할 수 없어 차기 대통령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를 적용하기는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로서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만들자는 한나라당 내 친이 측의 의도가 분명하게 엿보인다”며 “어쩌면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필자는 또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4년 중임제’를 하기는 하되, 사실상 ‘얼굴마담’에 불과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속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 특임 장관이 이날 이날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 2회 한선국가전략포럼 조찬 특강을 통해 "5년 단임제는 승복의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며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할 것이 아니라 4년으로 하고 잘하면 또 뽑히도록 해 줘야한다"고 말했다.
즉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 장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권력 집중에 따른 폐해문제를 집중 부각하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로 극복할 것을 제안했다.
실제 그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부패해 그렇게 됐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식이 부패문제와 연관됐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이 돌아가셨다"며 "5년 단임제 이후의 대통령들 중 한 분도 성한 분들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모든 것이 권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집중된다"며 "권력을 쥔 사람은 반대파를 누르려고 싸우고 반대파는 권력을 쥐려고 싸운다. 5년 동안 모든 책임과 권력을 갖게 되니 모든 비판과 반대도 대통령에게 몰린다. 대통령이 국제회의를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채소 값과 배추 값을 걱정해야 하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진행이 안된다"고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또한 그는 "국제경제가 일원화돼 미국경제가 잘못되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니 대통령이 내치와 외치를 다 맡기는 힘들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는 안보·국방·통일·외교에 대한 권한을 주고 이 부분은 정쟁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했다.
사실 이 장관 발언의 핵심은 바로 ‘분권형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에 있다.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겨우 한마디의 언급이 있었던 반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을 보더라도, 그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즉 차기 여야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모두 ‘4년 중임제’를 지지하고 있고, 국민 또한 4년 중임제를 찬성하고 있으니, 아무리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계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뜻대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4년 중임제’라는 미끼를 정치권과 국민 앞에 던져 놓고, 자신들은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대어를 낚겠다는 욕심이 담겨 있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은 사실상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허수아비 대통령은 4년 중임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회 다수당이 선출하는 국무총리가 실권을 갖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추진하겠다는 여권 친이계의 속셈은 빤하다.
한번 잡은 정권을 영원히 내놓지 않겠다는 ‘장기집권’ 음모가 아니겠는가.
여권의 친박계는 물론 민주당 등 모든 야당도 이재오 장관이 제안한 <4년 중임제 + 분권형 대통령제>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느 계파든 이 장관의 제안에 솔깃해하는 순간,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란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4년 중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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