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오세훈 시장의 치졸한 변명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0-12-19 12: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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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18일 밤 예정돼 있던 ‘무상급식’ 주제의 KBS 심야토론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서울시와 민주당이 서로 “네 탓”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심야토론 진행자인 왕상한 교수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심야토론 주제가 바뀝니다. 생방송 12시간 전에 특정인의 참여를 이유로 불참을 통고한 분께 프로그램 진행자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방송은 장난이 아닙니다. 애들 반찬투정도 아니고...이게 뭡니까”라는 질책성 글을 올렸겠는가.

같은 날 민주당 측 토론자로 나설 예정이었던 이인영 최고위원도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운동본부 배옥병 대표가 패널로 나오면 토론에 나오지 않겠다고 해서 무산되었습니다. 토론자도 언론검열하듯 해야 하나요? 씁쓸하군요.”라고 꼬집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서울시는 이종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무상급식’ 토론회 불참 이유를 상세하게 밝혔다.

이 대변인에 따르면 당초 곽노현 교육감이 토론회 참여를 거부해 민주당 측에서는 이인영 최고위원과 친환경무상급식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종욱 시의원이, 한나라당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시의원 1인이 토론자로 나서는 2:2 토론회를 추진했다는 것.

그러나 김종욱 시의원이 불참의사를 밝혀 김 의원 대신 교수가 토론자로 나오기로 했다가 민주당 측이 18일 새벽 1시 내정됐던 토론자 교수를 시민단체 배옥병 대표로 교체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는 것.

그래서 서울시는 다시 1:3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민주당이 2:2 구도를 고집해 오 시장이 불참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이 같은 주장이 100% 사실이라고 해도, 결국 오 시장의 불참으로 인해 무상급식 토론회가 무산됐다는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공개 토론회를 제안한 것은 오 시장 자신이다.

그렇다면, 토론회 구도가 1:3 구도든 2:2 구도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또 시민단체 대표가 패널로 나오든 시의원이 나오든, 교수가 나오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정말 자신의 주장이 옳다면, 토론 상대가 누구든 당당하게 토론회에 임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토론자들이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는 상대가 정치인들과 교수들이다. 반면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꺼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전문성이 취약하다. 그저 수박 겉핥기식의 얄팍한 지식으로 토론회에 임하다보니까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방향을 잃고 상대에게 휘말리기 십상이다.

교수들은 전문성이 있지만 대중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상대로 토론회에 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도 몇 차례 토론회에 나간 일이 있다.

그 토론회에 정치인들이 나온다면 가볍게 생각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가 나온다면 잔뜩 긴장하게 된다.

오 시장 역시 교육감이나 시의원, 혹은 교수를 상대로 하는 토론회는 자신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민단체 관계자가 나온다니까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 토론회를 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공개토론회를 제안한 것은 오 시장 자신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고, 원치 않는 사람이 토론회에 나온다고 해서 불참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오 시장은 왕상한 교수의 지적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출연하겠다고 해 놓고 '누구 불러라, 누구 나오면 안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 일단 밥상 앞에 앉겠다 해놓고 밥도 반찬도 원하는 것만 밥상 위에 올려라, 아니면 간다, 이런 거냐"며 "자기 싫은 사람이 나오면 안 한다? 뭐가 두려워? 일도 그렇게 해?"라고 꼬집었다.

물론 왕 교수가 ‘오세훈’이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이게 누구를 지목한 것인지는 오 시장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대변인의 입을 통해 치졸한 변명이나 늘어놓다니 정말 한심하다.

그렇게 자신 없으면,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든지, 아니면 아예 이쯤에서 시장 직을 사임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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